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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채널예스 : 임경선의 성실한 작가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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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 직업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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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_imagetoday


여름에 갈 가족휴가를 미리 당겨서 다녀왔다. 행선지는 인도네시아 발리, 리조트는 초등학생 딸아이가 놀기 좋게끔 클럽메드 발리로 정했다. 클럽메드 리조트는 명징한 특징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G.O.(Gentle Organizer)의 존재다. GO들이란 일종의 리조트의 ‘친구들’로서 한마디로 손님들을 다양한 의미에서 ‘즐겁게 지내도록’ 돕는 역할을 맡고 있다. 전 세계에서 모집된 최소 삼사십 명의 젊은 남녀 GO들이 있는데 그들이 하는 일은 대략 이렇다. 클럽메드 소개 및 안내하기, 식사시간에 손님들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 대화 나누기, 수영장에서 이벤트 진행하기, 해양스포츠 강습하기, 매일 밤 쇼에서 연기와 춤을 선보이기, 부모들을 위해 어린아이들을 돌봐주고 놀아주기, 등등. 리조트 내에서 지나칠 때마다 그들은 수시로 인사를 하고 친근한 대화를 건다. 대체 언제 쉬는지도 모르게 오전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늘 신나고 흥이 난 웃는 얼굴로 그들은 손님 곁을 맴돈다. 나는 여행을 가면 늘 흥미 있게 지켜보는 것이 다양한 직업의 세계인데 그중 가장 놀라운 직업 중의 하나는 클럽메드 GO들이라고 생각한다. 말수가 적고 늘 적당히 우울한 나로서는 저렇게 ‘흥이 나 있는 상태’로 하루 종일 지내야 한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는다. 정말 대단하고 힘들어 보였다.  

 

발리 아융강에서 래프팅을 할 때 또 다른 ‘극한직업’과 만났다. 고무보트를 같이 타고 래프팅을 안내하는 까무잡잡한 현지인 가이드들이다. 보트를 머리에 이고 계곡의 엄청 긴 계단을 맨발로 내려가서 손님들 네다섯 명을 태운 후 약 한 시간 동안의 래프팅을 인솔한다. 손님들은 처음 해보는 노 젓기가 서툴다 보니 아무래도 노 젓기는 대부분 그들의 몫. 혼자 대여섯 명이 탄 보트를 영차영차 움직인다. 그 와중에 다양한 나라의 언어로 손님들의 흥을 돋우는 동시에 때때로 짓궂은 물장난도 쳐준다. 대체 하루에 몇 회씩 래프팅 가이드를 하는지 가늠이 안 되지만 내가 보기엔 하루 한 번도 너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편, 휴가에서 돌아오자마자 일이 터졌다. 내가 지난 삼 년간 격 달로 주최해온 ‘이기적인 특강’에 안철수 국회의원이 일주일 정도의 기한을 남기고 강연을 수락한 것이다. 정치인의 스케줄이니 어쩔 수 없다. 서둘러 매번 강연을 진행해온 장소로 바로 대관 신청을 했는데 수락 며칠 후 정치인이라는 이유로 대관을 못 하게 되었다고 번복을 해서 부랴부랴 다른 강연장소를 섭외해야만 했다. 안철수 의원 측의 전담 언론사 사람들도 참석해야 한다고 해서 또 한 번 공간문제로 골머리를 썩었다. 결국 다행히 장소를 구했지만, 강연날짜를 불과 며칠 앞둔 상태이다 보니 피 말리는 시간들이었다. 그동안 내내 나는 안철수 의원의 비서실장과 연락을 취하며 상황을 협의하고 조정했다. ‘정치인의 비서실장’이라는 직업도 극한직업이었다. 얼마나 바쁘신지 전화가 바로 연결이 되는 경우가 거의 없었고, 문자메시지의 답신도 한참 후에야 받곤 했다. 정치인의 비서실장은 세세한 것 하나하나 예민하게 하루 종일 챙겨야 하는 직업이었다. 그렇다고 비서실장의 상사인 그 정치인이 팔자가 편하냐면 그렇지도 않은 건 확실하다. 『안철수의 생각』을 다시 읽으면서 이 분도 얼마나 다양한 사안에 대한 공부와 고민을 많이 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을 상대해야 할까를 상상해보면 아득하기만 했다. 정말이지 세상엔 쉬운 일이 하나도 없다.   

 

지난 이주간 이토록 동적이고 시끄럽고 치열한 직업의 세계를 가까이서 겪다 보니 그에 비하면 글을 쓰는 직업이란 얼마나 정적이고 고요하고 ‘나홀로’인가 싶었다. 소설 『채식주의자』로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수상하고 귀국한 한강 작가의 기자회견을 읽는데 ‘최대한 빨리 제 방에 숨어서 글을 쓰고 싶어요’라는 말이 귀에 쏙 꽂혔다. 작가라는 직업의 가장 치열한 시간은 묵묵히 혼자 글을 쓰는 일임을 새삼 통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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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의 생각 안철수 저/제정임 편 | 김영사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안철수 교수의 정치 참여에 대한 고민에서 인간 안철수에 대한 궁금증,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문제ㆍ공교육의 붕괴와 학교폭력ㆍ언론사 파업과 강정마을 사태 등 사회 쟁점에 대한 견해, 복지와 정의와 평화를 바탕으로 쌓아올린 대한민국의 비전과 통찰, 그리고 미래의 주인공인 청소년들에 대해 이야기가 담긴,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와의 대담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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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자한강 저 | 창비 | 번역서 : Vegetarian
『채식주의자』는 육식을 거부하는 영혜를 바라보는 그의 남편 '나'의 이야기이다. '영혜'는 작가가 10년전에 발표한 단편 『내 여자의 열매』에서 선보였던 식물적 상상력을 극대화한 인물이다. 희망없는 삶을 체념하며 하루하루 베란다의 '나무'로 변해가던 단편 속의 주인공과 어린 시절 각인된 기억 때문에 철저히 육식을 거부한 채로 '나무'가 되길 꿈꾸는 영혜는 연관고리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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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지 못한 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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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무 살 때부터 갑상선암 환자다. 지금까지 5번의 외과수술을 받고 가장 마지막으로 수술을받은 것이 일년 전이다. 그 후로 반년에 한 번 정기검진을 간다. 반년 전,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암세포가 남아있다고 해서 핵의학과에서 방사능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어제 또 반년 만에 정기검진 결과를 들으러 대학병원에 다녀왔다. ‘수치는 예전에 비해 떨어졌는데 만족스러울 정도는 아니다’라고 주치의는 말했다. 해석하자면 현재 영상의학적으로는 갑상선암의 모습이 안 잡히지만 혈액검사결과 몸 어딘가에 아직도 갑상선암의 ‘씨’는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씨앗은 언제라도 다시 커져서 또 외과적 적출수술을 받아야 할 가능성을 준다. 여태까지 한국에서 갑상선암 외과수술을 제일 많이 받은 사람이 7번이라고 한다. 이제 5번을 기록한 내게 주치의가 “임경선님도 만만치 않게 수술하셨죠.” 라며 슬픈 미소를 지어 보였다. 결과를 듣고 온 어제는 분노와 우울이 교차하는 하루였다. 그래도 어김없이 다음날 아침이면 작업하는 카페에 나와 노트북 컴퓨터를 열고 글을 써야 하는 것이 주어진 인생.  

 

돌이켜보면 이 지병으로 내 인생의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우선 첫 번째와 두 번째 암수술을 연이어 받게 되어 심신이 약해질 대로 약해져서 당시 다니던 일본 도쿄대학 대학원에서의 학업을 도중에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그전까지 취업은 한 번도 고려해보지 않고 그저 계속 공부해서 학자와 교수가 될 거라고만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뜻밖의 복병으로 인생의 진로는 완전히 틀어지게 되었다. 반년 간의 요양기간을 거쳐 취직을 해서 회사원 생활을 시작했다. 그런 후, 결혼을 하고 나서 석 달도 채 되지 않았던 신혼시절, 세 번째 갑상선암 재발수술을 받게 되었다. 외과적 적출을 한 후에는 반드시 방사능치료와 병행을 해야 해서 한동안 임신을 할 수가 없었다. 29살 때 결혼을 했는데 첫 아이는 몸이 잠시 청정상태였던 한참 후인 36살에야 가질 수 있었다. 

 

네 번째 갑상선암 수술은 인생의 진로를 또 한 번 크게 바꾸었다. 당시 나는 대기업 마케팅팀에서 12년째 직장인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그 때의 수술로 체력이 쇠할 대로 쇠해서 도저히 바쁜 회사생활을 지탱할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회사를 그만두었다. 일하는 시간과 체력을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대안의 일을 찾아보니 그 상황에서 시도해볼 수 있는 거라고는 ‘글쓰기’밖에는 없었다. 그렇게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글을 쓰는 일이 차츰 직업이 되어갔다. ‘작가가 된 계기’에는 흔하게 작가들의 인터뷰에서 볼 수 있는 문학소녀의 꿈도, 숱하게 시도했던 등단을 위한 습작도, 어느 날 불현듯 나타난 섬광 같은 계시도 없었다. 그저 몸이 너무 약해 출근을 못하게 된 한 인간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뭐라도 해볼 수 있는 게 없을까 해서 시작한 것뿐이다. 다시 말해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지긋지긋한 네 번의 암 재발수술을 받을 일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나는 분명히 책을 쓰는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갑상선암이라는 끈질긴 친구 덕분이다. 인생은 그토록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 어떻게 생각하면 뜻밖의 직업을 경험하게 해준 것에 대해 나는 이 지병에게 감사해야 하는 걸까? 결과적으로 글 쓰는 일이 회사를 다니는 일보다 더 적성에 맞았던 것일까? 나는 여전히 알 수 없다.

 

어수웅 문학전문기자의 에세이 『탐독』에서 여러 작가들의 ‘작가가 된 계기’들을 읽으면서 불쑥 그런 생각들이 들었다. 특히 소설가 정유정의 경우는 간호사 경력과는 무관하게 아주 어렸을 때부터 글을 써왔고 ‘언젠가는 반드시 소설을 쓰겠어’라는 비장함을 계속 품어왔다고 한다. 김중혁 작가도 김영하 작가도 학창시절부터 장차 소설을 쓰리라는 어떤 특별하고 명징한 계기와 맥락들이 있었다. 그런 배경이야기를 접할 때면 스스로가 왜소해지는 기분이 든다. 비장한 열망이나 소명의식 하나 없이 건강하지 못한 몸이 불러온 ‘차선책’ 혹은 ‘궁여지책’으로 시작한 글쓰기라는 점에서 자격미달이거나 뿌리가 약하다는 생각이 들어 글에게 황송한 기분이랄까. 하지만 그게 또 나인 걸 어떡하리. 그냥 이대로 내 길을 걸어갈 수 있는 만큼 걸어가보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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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독어수웅 저 | 민음사
책을 바라보는 열 개의 시선 김영하, 은희경, 정유정, 움베르토 에코, 안은미… 모두가 책의 위기를 말하는 지금, 10인의 예술가와 학자가 들려주는, 책을 매개로 한 마법과도 같은 순간과 이야기가 펼쳐진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예술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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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트럼펫 연주자 쳇 베이커와 피아니스트 세이모어 번스타인의 인생을 그려낸 영화 두 편을 보았다. <본 투 비 블루><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소네트>다. 각기 다른 의미에서 예술가의 삶에 대해 생각을 남기는 영화였다.

 

쳇 베이커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웨스트코스트 출신 백인 재즈 트럼펫 연주자로서 뉴욕의 전설적인 재즈클럽 <버드랜드>에 기라성처럼 데뷔한다. 이내 재즈팬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는 화려한 시절을 보내지만, 중증의 헤로인 중독에 빠져 경제적 가정적 파탄으로 생활이 망가지고 급기야는 트럼펫을 불지 못하는 구제불능의 상황으로 치닫는다. 감옥살이를 마치고 나온 쳇 베이커는 어떻게든 다시 트럼펫을 연주할 수 있기 위해 노력해보지만 세상은 물론 오랜 매니저마저 그를 등지고 만다. 하지만 그를 지켜봐 주는 헌신적인 연인, 제인의 사랑과 보살핌 속에서 쳇 베이커는 마약의 도움 없이 서서히 트럼펫을 다시 불 수 있게 되고 시골 읍내의 피자가게 무대에 서는 등 초심으로 돌아가 고군분투한다.

 

꾸준한 노력으로 예전 매니저의 마음을 움직인 쳇 베이커는 새 앨범을 녹음하고 수많은 제작자 앞에서 감동적인 트럼펫 연주와 보컬을 선보이며 재기의 희망을 다진다. 그리고 마침내 재즈클럽 <버드랜드>의 무대에 다시 설 기회를 거머쥔다. 하지만 <버드랜드> 공연 당일, 제인도 곁에 없는 와중에 라이벌로 의식하던 마일스 데이비스도 공연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쳇 베이커는 심리적인 압박감에 무너지며 백스테이지 대기실에서 그만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해버리고 만다. 성공적인 공연으로 재즈아티스트로서 재기에 성공하는 대가로 다시 헤로인 중독자의 삶을 살게 된 것이다.

 

피아니스트 세이모어 번스타인이 영화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소네트>에서 했던 말이 생각난다. “무대 위에서의 공포감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인생에서 마주칠 수많은 변화는 어떻겠어?” 그렇게 말하던 재능 넘치는 피아니스트로서 음악계의 주목을 받았던 세이모어 번스타인은 쳇 베이커와 사뭇 다르게 예술을 지속하기로 결정한다. 한때는 공연하는 피아니스트로서 수많은 청중의 갈채와 전폭적으로 지지해주는 재력가의 절대적인 지원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 진정한 예술은 부와 명예를 누리는 것이 아님을 깨닫고 한창 정점에 서 있을 때 자발적으로 무대에서 내려온다. 그리고 뉴욕의 작은 스튜디오 아파트에 살면서 피아노 선생님으로 살기로 결심한다. 주변사람들은 재능을 낭비하는 것 아니냐, 재능이 아깝다며 그를 극구 말리지만 자신의 재능을 제자들에게 주기로 결심한 그의 생각은 확고했다. 그는 제자들에게 음악적인 영감을 주는 것을 통해 그만의 예술세계를 지켜나간다.

 

두 예술가의 살아가는 방식은 어쩌면 대조적이다. 쳇 베이커는 강렬한 예술적 재능과 충동을 터트리고 불사르기를 욕망했고 그를 위해서라면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반면 세이모어 번스타인은 스포트라이트에서 손수 내려와 자신의 재능을 제자들에게 전수하고 나누는 삶을 택한다. 일견 세이모어 번스타인의 삶의 방식이 건실하고 ‘좋아’보일 것이다. 하지만 각자의 예술가가 자신의 재능을 사용하고 예술을 영위해나가는 방식에 맞고 틀리고는 없다. 그저 각자의 무게를 감당할 뿐이다. 인생의 전환점이 될, 가진 모든 것을 다 쏟아부어야 할 <버드랜드> 공연을 앞두고, 쳇 베이커가 극심한 고민 끝에 대기실에서 헤로인 주사의 힘을 빌린 일은 인간적으로는 너무 안타까웠지만 동시에 그의 절실한 마음이 너무 이해가 갔다.

 

마지막 기회인 이번 무대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상의 연주를 보여줄 수만 있다면 난 그 외의 모든 것을 버려도 좋다는 그 예술적 열망을 너무나 잘 알기에 관객으로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그의 연주를 벅찬 감정으로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예술가는 그저 자신의 머리가 아닌, 마음이 시키는 대로, 길을 걸어나갈 뿐이다. 재기에 성공해서 정상의 재즈아티스트로서 활동하게 되지만 결과적으로 헤로인 중독으로 죽어버린 쳇 베이커의 일생을 누가 어떤 잣대로 실패한 삶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까.

 

예술가에게 재능은 존재의 본질 같은 것. 그 재능을 어떻게 다루면서 살아가야 할까. 쳇 베이커처럼 짧고 굵게, 뜨겁고 강렬하게 불사르며 살아갈까, 혹은 세이모어 번스타인처럼 가늘고 길게, 겸손하고 마일드하게 살아갈까. 대중의 사랑을 더 이상 받지 못하게 되었을 때 혹은 더 이상 자신에게 재능이 남지 않았다고 판단되었을 때, 쳇 베이커의 아버지처럼 중도에 현실을 받아들이고 예술을 포기함이 맞는 것일까, 아니면 재능의 되살아나기를 열망하며 끝까지 노력하며 꿈을 쫓을 것인가. 다른 잘나가는 예술가들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고 뚝심 있게 나만의 길을 걸어갈 것인가 아니면 다른 예술가들을 향한 질투와 경쟁을 되레 나의 재능발휘를 위한 자극제로 이용할 것인가. 예술가들 저마다의 삶은 치열한 인생의 질문들을 우리에게 던진다. 나는 어떤 작가로 나아갈 것인가. 나는 글쓰기를 통해 무엇을 추구하는가.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재능이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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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중쇄를 찍자!>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본다. 바텐더로 일하면서 일러스트레이터의 꿈을 키우는 사람,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소설가지망생, 낮엔 음식배달을, 밤에는 음악을 만드는 사람. 막막함과 불안감에 포기해버릴까 싶다가도 노력하다보면 언젠가는 반드시 데뷔할 수 있을 거라는 꿈을 품고 오늘도 고군분투하고 있다. 

 

주간만화 편집자들과 만화가들의 희로애락을 그려낸 일본드라마 <중쇄를 찍자!>에는 원로 만화가 미쿠라야마 선생 밑에서 십년째 문하생으로 일하는 ‘누마타’라는 청년이 등장한다. ‘청년’이라는 단어를 쓰기도 애매한 게 그는 이미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다.  스무살 때 만화잡지 신인상을 타는 바람에 만화가 데뷔의 꿈을 품고 이 길로 들어섰지만 아직 십년 째, 고참 문하생이 되어갈 뿐, 자신의 연재만화를 가진 정식 만화가로 데뷔를 못하고 있다. 그가 자신의 만화컨셉을 편집자에게 설득시키는 일에 끊임없이 실패하는 사이 한참 어린 다른 후배 문하생들은 차례차례 먼저 데뷔해서 문하생의 신분을 벗어난다.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가는 후배들을 보며 속으로 고통스러워하지만 누마타는 그럼에도 이 단어만은 잊지 않으려고 다짐한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언젠가는.

 

새로 들어온 후배 문하생들에게 ‘난 여기 밥이 맛있어서 십년씩이나 문하생 생활을 하는 것’이라는 둥의 안쓰러운 자학농담을 던지면서. 

 

어느 날 미쿠라야마 선생의 작업실에 신참 남자문하생, ‘나카타’가 들어온다. 그림실력은 서툴고 성격도 반사회적이지만 미쿠라야마 선생도 은연중에 나카타의 숨겨진 재능을 높게 평가한다. 우연히 나카타의 만화콘티를 훔쳐본 누마타는 한눈에 그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그에게 격심한 질투와 충격을 받게 된다. 그리고 자신은 그 오랜 기간동안 제대로 싸워보지도, 부딪혀보지도 않고 ‘언젠가는’ 인정받는 날이 오겠지라는 근거없는 낙관에 의존해왔음을 직시한다. ‘꿈을 향해 달려가는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라는 자부심 하나에 마음을 기대며.  급기야는 마흔살 생일을 기점으로 만화를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가서 가업을 잇기로 결정한다.   

 

누마타는 자신의 청춘을 바쳤던 미쿠라야마 선생의 작업실을 마지막으로 걸어나오면서 속으로 되뇌인다. 

 

평생 만화만을 생각하며 살아왔다.
꿈을 꾸고 있는 동안에는 그 안에서 행복했다.
현실따위는 필요없을 정도로.
만화 속에서만 살아가고 싶었다.
만화가를 추구하는 동안은 특별한 사람일 수 있었다.

 

자신의 오랜 꿈과 작별하는 누마타의 마지막 독백이 진하게 가슴을 울렸다.

재능의 있고없고와 승패의 갈림길은 뭘까.

 

<중쇄를 찍자!>의 만화주간지 ‘바이브스’ 부편집장 이오키베는 말한다. ‘작가 본인이 스스로 극복해내야 할 벽이 있다’고. 편집자 포함 주변에서 아무리 도움을 준다고 해도 결국에는 본인이 스스로를 움직여야만 한다고. 혼자서도 멀리까지 헤엄쳐 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누마타는 결국 그것을 못한 것이었고 그것을 하지 못할 거라는 자신의 한계를 깨달은 것이었다.  

 

가만 보면, 꿈을 이룬다는 것은-
후천적인 노력만으로도 안 되고
선천적인 재능만으로도 안 되고
운만으로도 안 되는 것 같았다. 

 

된다는 아무런 보장이 없을 때 우리는 언제까지 꿈을 향해 노력해야만 할까.
노력해도 결과가 따라주지 않을 때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언제까지 꿈을 꾸고 언제부터 현실을 직시해야만 하는가.
아니면 실은 버티는 것 자체가 재능일까. 

 

데뷔에 성공했다고 해도 그것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문학업계에서도 높은 경쟁률을 뚫고 그토록 염원했던 신인문학상을 거머쥐었건만 그 후에 원고청탁이 들어오지 않거나 가까스로 첫 책을 냈다고 해도 판매저조로 인해 존재감이 사라지는 신인작가들이 부지기수라고 한다. 그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을까. 삼십오 년간 최전선에서 작가생활을 해낸 무라카미 하루키는 누구나 조금 재능이 있으면 소설 한두권쯤은 쓸 수 있지만 작가로서 지속가능한 것이야말로 진짜 어려운 일임을 강조한다. 타고난 재능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시한부 선물이고, 그것을 어떻게 보존하고 버전업해나갈지가 ‘진짜’ 재능의 승부처라는 의미일 것이다. 휴- 산 넘어 산이다. 무엇보다도 ‘나에게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는 실제 발을 푹 담궈보기 전에는 그 답을 알 수 없다는 것이 함정. 자신에게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만이라도 많은 시간과 고통을 그 대가로 치뤄야 한다는 것이 ‘꿈’이 부과하는 엄중한 숙제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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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쇄를 찍자! 1 마츠다 나오코 글,그림/주원일 역 | 애니북스
"이 만화를 팔겠습니다!" 어엿한 편집자가 되기 위한 그녀의 뜨거운 업무열전!여자유도선수 출신 쿠로사와 코코로는 한 대형출판사의 최종면접시험을 보고 있던 중… 갑자기 시험장에 난입해 난동을 부리는 청소아저씨를 업어치기 한판으로 제압한다. 어찌된 일인지 청소아저씨는 그 출판사의 사장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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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작품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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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소설 쇼코의 미소를 출간한 최은영 작가의 트윗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저의 첫 번째 책이 곧 나와요. 제목은 쇼코의 미소입니다. 행복합니다.’ ‘사랑하는 할머니 정용찬 여사(86)께서 보내신 카톡. 책이 나와서 사랑하는 사람들이 기쁘니 마음이 좋다.’ 최은영 작가의 할머님이 손녀에게 보내신 축하 카톡 메시지는 달달했다. 그녀의 설렘과 행복이 고스란히 전해지면서 불현듯 내 첫 장편소설이 나왔을 때가 기억났다. 그 전에도 단편소설집을 냈었지만 ‘첫 장편소설이 출간되었을 때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감회가 특별했다. 왜냐하면 그만큼 거기까지의 과정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첫 장편소설 기억해줘 '작가의 말'에도 썼지만 2013년 가을부터 2014 여름까지 이 소설을 썼던 시간에 대해서는 선택적 기억상실증처럼 기억나는 것이 별로 없다. 가끔은 '내가 언제 이런 걸 썼지?'라며 불가사의한 기분이 들 정도다. 그럼에도 몇 가지 잔상은 남는다. 쓰기 전에 염두에 두었던 플롯은 막상 글을 쓰기 시작하니까 전혀 다른 플롯으로 쓰고 있었다. 도중에 수없이 캐릭터와 스토리전개도 바뀌었다. 막상 여행을 떠나보면 원래의 계획대로 풀리지 않듯이, 장편소설을 쓰는 일도 자욱한 안갯속을 헤매면서 헤쳐나가는 일이었다.

 

처음 빈 백지를 예쁜 한글폰트 글자들로 채워나가는 일은 흥분되는 일이었다. 감정이 흐르는 대로, 생각이 나는 대로 자유롭고 충동적인 자신을 제어하지 않는 일은 무척 기분이 좋았다. 하나 쾌감은 잠시, 이내 끈끈한 지옥이 기다리고 있었다. 헐렁하게 채워놓은 내용을 이젠 확 조여줄 차례. A4 100장 분량을 종이로 출력 후, 수정을 해야 한다. 컴퓨터 화면으로 보는 원고와 종이로 출력해서 보는 원고는 너무도 달라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내가 대체 무슨 생각으로 당시 이런 글을 썼을까? 나 미쳤나?’

 

이 글 뭉치들은 앞뒤 전후 논리전개가 맞지 않고, 등장인물들은 서로를 앞에 두고 너무나 과묵하거나 지루했고, 정사 장면은 저 혼자 경박하게 신이 나 있다. 첫 수정의 운명은 그래서 대개가전면적 수정이다. 어찌어찌해서 장편소설 초고를 완성해서 출판사에 보냈다.

 

부적합판정을 받을 거라고는 예상했다. 출판사와 중간조율을 하는 마음으로 보냈지만 역시 여러 편집자의 가차없는 비판을 들을 때는 아리고 속상했다. 또 한 번의 전면적 수정을 거쳐 2고를 썼고, 그 후 3고와 4고를 썼다. 3고를 보내고 나서였던가, 이번에는 그래도 대략 통과되겠지 싶었는데, 딸아이의 방을 청소하던 중에 평소 울리지도 않는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고 나는 직감적으로 이번 원고도 통과가 되지 않았음을 알아차렸다. 출판사에서 좋은 소식이 아닌 경우는 보통 직접 전화를 걸어서 말하기 때문이다. 내 직감은 맞아떨어졌다. 담당 편집자는 신중하고 무거운 어투로 소설 원고 검토결과에 대해 조심스럽게 말하기 시작했다. 잡고 있던 청소 밀대를 바닥에 내려놓고 맥없이 전화기를 든 체 딸아이의 어린이 침대에 누웠다. 수화기 너머의 담당 편집자 듣기 부담스럽게시리 한숨을 얼마나 깊게 내쉬었는지 모른다. 머릿속이 캄캄했다. 떼쓰는 아이처럼 짜증 섞어 하소연을 늘어놓기도 했다. 담당편집자는 그저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을 뿐이고 문제는 그 누구도 아닌 내가 원고를 잘 쓰지 못해서 그런 것뿐인데.

 

단편소설과는 달리 장편소설은 아무리 단순한 이야기라도 쓰는 동안 몇 번이나 거대한 장벽이 가로막는가 하면, 암호를 푸는 것처럼 머리를 쥐어짜야 할 때도 있었다. 며칠을 생각해도 돌파구를 못 찾고 막막해하며 밤새 악몽으로 끙끙 앓다가 아침에 일어나보면 어느새 스르륵 그 문제가 절로 풀려버리는 신기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그런 날은 정말이지 온종일 행복한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조증과 울증의 무한 롤러코스터의 나날들. 중간에 여러 불안한 과정도 거쳤지만 어쨌든 마침내 첫 장편소설의 원고는 출판될 수 있었다. 

김연수 작가는 산문 소설가의 일에서소설가는 소설 쓰는 일 외에 애시당초 할 일을 만들지 않는 것으로 시간 관리를 한다고 썼는데 그와 엇비슷한 느낌으로 원고를 출판사에 넘겨놓고도 제대로 쉬거나 놀지도 못했다. 글을 쓰는 일 외의 모든 시간이 시시하게 느껴졌다. 원고를 매만지던 열기와 흥분이 채 가시지 않아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소설 원고를 넘긴 다음에도 매일 아침 단골카페에 나가 다음에 작업할 에세이를 쓰기 시작했다. 소설 원고를 붙들고 있을 때는 그토록 힘들어했으면서 막상 끝나니 이번에는 한창 소설을 쓰던 그 시기를 몸으로 그리워했다. 고생했던 기억과 감각들만은 ― 초고를 쓰면서 진도가 꽉 막혔던 때라거나, 같은 원고를 거듭 수정하느라 토나올 지경이 되었던 일이나, 편집자의 너무 정확해서 뼈아픈 중간리뷰를 받을 때라거나 ― 선별적으로 잊어갔다. 대체 언제 원고지 600매를 채워냈는지도 아득하기만 했다. 아이를 낳고 얼마 지나면 임신출산의 고통을 망각해서 또다시 아이를 가지고 싶어 하듯 다음에는 어떤 소설을 써볼까 백일몽을 꾸기도 했다. 첫 장편소설을 쓰고 난 후의 그 형언하기 힘든 행복하면서도 허탈한 느낌은 아이 낳았을 때와 흡사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작업했던 9개월은 한 아이를 임신해서 낳기까지의 기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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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해줘 임경선 저 | 예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장편소설 『기억해줘』는 사랑과 상처, 그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임경선이라는 작가의 청소년기 시절과 그간의 연애 그리고 모성의 경험에 이르기까지, 그 모두가 녹아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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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를 쓰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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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에세이와 소설의 우열관계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다. 에세이와 소설을 몇 개씩 써본 경험으로 느끼기엔 현재로썬 이 정도 결론에 와있다.

 

1. 에세이와 소설 중에는 소설이 일반적으로 더 쓰기 어렵다.
2. 소설이 에세이보다 쓰기 어렵다고 해서 소설을 잘 쓰는 사람이 에세이를 반드시 잘 쓰는 것은 아니다.
3. 잘 쓴 에세이와 보통인 소설을 비교하면 잘 쓴 에세이가 훨씬 더 가치 있다.
4. 에세이 잘 쓰는 일도 꽤나 어려운 일이다.
5.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선 님은 소설보다 에세이가 훨씬 재밌어요.’라는 말을 들으면 조금 마음이 복잡해진다.

 

이것을 조금 더 단순하게 도식화해서 정리하자면,

 

잘 쓴 소설 > 잘 쓴 에세이
별로인 소설 < 잘 쓴 에세이
별로인 소설 = 별로인 에세이


라고 할 수 있겠다.

 

내 감각으로는 소설은 ‘머리’로 쓰는 것 같고 에세이는 ‘마음’으로 쓰는 것 같다. 그래서 에세이를 쓸 때는 기본적으로 마음이 유연하고 말랑말랑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일부러 소재를 찾으려고 노력하거나 엉덩이 힘으로 버티기보다, 에세이는 쓰고 싶은 주제가 자연 발생적으로 떠올랐을 때 바로 써야지 가장 글에 생기가 돌고 재미있어진다. 종이 노트에 생각나는 대로 메모하면서 글을 풀어내고, 손글씨로 써놓은 내용을 컴퓨터로 옮겨서 타이핑할 때쯤이면 한 번 더 생각이 차분하게 정리된다. 에세이 소재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면 좋아하는 작가들의 에세이를 읽어가면서 어떤 생각의 자극을 받거나 자유연상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자고 일어났을 때 침대에 누워 멍하니 있을 때도 뇌가 밤새 쉬어서 그런지 이런저런 쓸 거리가 저절로 생각나기도 한다. 그래서 머리맡에는 늘 애용하는 몰스킨 노트북을 두고 자게 된다.

 

에세이에서 내가 중요하게 고려하는 점은 두 가지다. 첫째는 솔직함, 둘째는 문체다. 에세이는 애초에 저자의 속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자비 없는 글 장르이다. 솔직함을 가장한 자기 포장인지, 담백하게 있는 그대로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했는지는 글의 행간에서 모두 전달된다. 에세이는 아름답게 포장하거나 장식하기보다 솔직한 것이 훨씬 더 매력적이다. 에세이를 쓸 때는 내 안에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 말아야 한다. 간절히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자기검열이나 자의식을 떨쳐내고 오로지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고 싶은 욕구만으로 써내려간다. ‘나답게’ 라는 것은 역설적으로 나를 의식하지 않고 쓰는 것이다. 


그러려면 글을 쓸 때 내가 혹시 어떤 내용을 얼버무리고 있는지, 혹시 어떤 내용을 일부러 모호하게 흐리고 있는지, 혹시 어떤 내용을 말하기 두려워하는 게 있는지 스스로 정직해야 한다. 솔직한 글이 지루하기란 거의 불가능하고 솔직하지 못한 글에 감정 이입할 독자들은 별로 없다. 글을 통해 나를 멋지게 치장하고 포장하거나 가면을 쓰는 것은 오래 못 가고 어느덧 스스로도 괴리를 느껴 글 쓰는 행위 자체가 고통이 된다. 솔직함은 글쓰기를 장기적으로 오래 견딜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얼마전에 읽은 이석원의 이야기 산문집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은 다시 한 번 이석원 작가의 ‘솔직함’이 가진 힘을 새삼 느끼게 해주었다. 그는 『언제 들어도 좋은 말』안에서 자신을 이야기 속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첫 소설 『실내인간』을 사년에 걸쳐 쓰면서 겪었던 내밀한 고통을 담담하게 말한다. 실은 자신이 소설 쓰는 일을 전혀 즐기지 않았다는 깨달음, 그래서 글쓰기가 어쩌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좌절감을 가감없이 토로해서 읽는 내 마음에 울림을 주었다. 그런 이야기들은 저자가 독자들 앞에서 쉽게 할 수 없는 말일텐데도 그는 허세나 연민없이 그저 담백하고 솔직한 표현으로 감동을 주었다. 폼나지 않더라도 자유로운 것이 최고다.

 

두 번째로 내가 에세이에서 중시하는 것은 작가 고유의 문체다. 문체는 그 작가의 개성이자 매력의 상징이라고 생각한다. 글만 읽고서도 ‘아, 이 작가의 글이구나’하고 알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 그 문체가 기왕이면 남들과는 다르면서도 읽기엔 쉽다면 금상첨화일 것 같다. 물론 가독성이 좋은 에세이가 무조건 좋다고만은 할 수 없지만 입에 자꾸 돌이 걸리는 느낌을 받으면서까지 에세이를 힘들게 읽고 싶은 마음은 없을 것 같다. 에세이는 본질적으로 독자를 즐겁게 해주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아무튼 나는 지금 그런 마음가짐과 지향점을 가지고 에세이를 작업 중에 있다. 말은 참 쉽게 하지만, 에세이를 ‘잘’ 쓰는 일은 서두에 썼듯이 보기보다 꽤 어려운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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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들어도 좋은 말 이석원 저 | 그책
작가로서 생계를 잇는다는 것에 대한 어려움, 이 길이 과연 자신의 길이 맞는지에 대한 두려움…… 『보통의 존재』에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던 삶을 살아가는 문제에 대해 그는 여전히 고민하고 있다.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명제에 대해 작가 자신 또한 자유롭지 못하다는 고백 섞인 글을 통해 우리는 또 한 번 위안을 얻고 안도의 숨을 내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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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작품을 평가하는 것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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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개적으로 타인의 작품을 평가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비판’하지 않는다. 개인적인 호불호는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내 주관적인 잣대로 ‘나쁘다’ ‘별로다’라고 말하기가 싫다. 하지만 그 작품이 책이든 영화든 음악이든 진심으로 마음에 들었다면, 공개적으로 예찬하고, 보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기를 바란다. 
 
이것은 내가 성격이 온건하거나, 내가 비판으로 상처 입은 경험을 반면 거울삼아 생긴 습성은 아니다. 나는 성격이 까탈스러운 사람이고 남의 흉보기 같은 것은 내키면 얼마든지 더 찰지게 할 수 있다. 내 글이나 책이 비판받는 것에도 별로 상처받지 않는다. 똑같은 특성을 놓고도 칭찬과 비판을 엇갈리는 것이 작품이 가진 속성이기도 하거니와 만약 그 작품에 어떤 절대적인 단점이나 결핍이 있었다면 사람들이 굳이 지적하지 않아도 창작자 당사자가 이미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비판하는 것 자체가 틀린 것도 아니다. 기본적으로 모든 작품은 온갖 평가에 열려있어야만 한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로 타인의 작품에 대해서는 ‘역시 악담만큼은 하지 말아야지’라고 굳게 다짐하게 되는 이유는 나 역시도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을 하게 되면서 그 과정에 얼마나 많은 고민과 고생이 있었는지를 몸소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리라. 아무리 창작자가 바보처럼 보인다고 해도(실제로 바보 같다고 해도) 제로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작업은 손이 많이 가는 힘든 작업임을 알기에 ‘저 작품은 쓰레기다’라고 한마디로 정리해버릴 수가 없다.

 

또한 타인의 작품을 한 번 비판하는 데에 맛을 들이기 시작하면 그것이 하나의 습관이 되고, 그러한 무언가에 대한 부정적인 방향의 계몽은, 경우에 따라 그 대상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조차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손상시키고 만다. 최소한 나만이라도 다른 사람의 작품을 공개적으로 비판하지 않기로, 기왕이면 그 작품의 좋은 점만을 보려고 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좋아할 구석이 없다면 그것은 취향의 문제라고 치부했다.
 
데뷔작 이후 오랜 세월만에 새 영화로 컴백한 한 영화감독의 영화 제작기를 읽었다. 오랜 공백 기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고백이었다.


‘하루빨리 다음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데, 빨리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자꾸 하면 더 글이 안 써지니까 빨리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안 하려고 노력하며 하루하루를 나도 눈치채지 못하게 빨리 쓰려고 진짜 노력을 많이 했지만…’


그는 3년여에 걸쳐 써낸 작품의 시나리오를 접으면서 불면증과 열패감에 시달리고 두 번 다시는 영화를 만들지 못할 수도 있다는 공포감에 바닥을 치기도 했지만 다행히 심기일전, 시나리오를 다시 고쳐 쓰고 두 번째 영화를 무사히 개봉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영화는 관객들의 호불호가 엇갈리는 가운데 2주차부터 스크린이 대폭 감소되면서 흥행참패는 기정사실이 되어갔다.

 

감독의 절절한 영화제작기에 마음이 움직여 나도 그 영화를 보러 갔지만 아쉽게도 내 취향의 영화도 아니었다. 하지만 물론 ‘재미없었다’고는 도저히 공개적으로 말할 수 없었다. 그 오랜 기간에 걸쳐 심혈을 기울인 결과물에 대해 도저히 가볍게 얘기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응원하기 위해 ‘재미있었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었다. 몇 년에 걸쳐서 만든 영화가 고작 짧은 몇 주간 상영되고 사라지는 일을 지켜보는 일은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도 안타깝고 먹먹한데 실제 그것을 직접 만든 사람은 대체 얼마나 마음이 힘들었을까.   


‘지금 내 마음을 과일로 표현하자면 한참 변색된 무른 바나나다.’ 


감독이 자신의 SNS에 적은 글귀가 참 아팠다. 남의 일이지만 결코 남의 일만은 아니었다.  모름지기 창작자가 처한 운명의 본질은 결국엔 같으니까.
 
현대사회에서는 비판과 외면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안고 가야 하는 것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처한 운명이다. 게다가 평가하고 비판하는 것은 쉽지만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것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보다는 낫기에, 만들어내고자 하는 열정이 강하기에, 우리는 다시 털고 일어나서 앞으로 걸어나갈 수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작가의 ‘성실함’이다.

 

지난 일 년간 <임경선의 성실한 작가생활>을 읽어주신 채널예스 독자분들께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성실히 오래오래 착한 마음으로 글을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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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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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료를 받고 가장 처음 썼던 것은 한 패션잡지의 마지막 페이지에 실리는 연애를 주제로 한 고정칼럼이었다. 당시 일본시사주간지를 즐겨 읽던 나는 고정칼럼지면을 갖는 것이 꿈이었다. 그 지면을 얻기 위해 십여 개의 샘플원고를 잡지사 담당기자에게 두 차례에 걸쳐서 보냈던 기억이 난다. 월간지의 고정칼럼을 반 년 가량 쓰고 나니 그 다음에는 한 스포츠신문에 고정칼럼을 쓰게 되었다. 이번에는 서툰 내 일러스트도 함께 실을 수 있었다. 시간이 또 지나자 한 종합일간지에서도 일과 직장생활을 주제로 고정칼럼을 쓰게 되었다. 그렇게 ‘칼럼니스트’라는 타이틀을 달고 일을 했던 적이 있었다. 한때는 고정칼럼연재를 동시에 여섯 군데 이상 쓰고 있어서 월화수목금 매일매일 칼럼을 마감해야 되었던 시절도 있었다.  
 
칼럼을 쓰는 꿈을 이루자 이번에는 책을 내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다. 특히 사랑에 관한 글을 쓰고 싶었다. 연애의 기술 따윈 나는 몰랐다. 그저 뒤도 돌아보지 말고 사랑하고 기꺼이 상처받으라는, 어찌 보면 바보의 사랑같은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당시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젠 말할 수 있다’같은 배포가 있었던 것 같다. 사랑에 관한 이야기는 세 권의 책에 걸쳐 넘치게 쓸 수 있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과 사랑’이라고 생각하던 나는, 그 다음엔 보완하는 의미에서 ‘일’에 대한 책을 한 권 쓸 수 있었다. 
 
그렇게 내가 관심을 가지는 주제들에 대한 글을 속 시원하게 다 쓰고 나니 이번에는 비소설이 아닌 소설, 즉 창작에 도전하고 싶었다. 좌충우돌을 심하게 겪으면서 첫 단편소설집을 냈다. 단편소설을 쓰고 나도 갈증은 해소되지 않았다. 조금 더 호흡이 긴 글을 쓰고 싶어서 이어서 장편소설을 썼다. 한 권으로는 충분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아직은 조금 더 소설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이 남아있어 이제 곧 두 번째 장편소설을 탈고할 예정이다.
 
갑자기 웬 옛날 이야기냐고? 올해 2015년은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작가가 된 지 딱 십 년이 되는 해라서 조금 감상적이 되었나보다. 프리랜서로 글을 쓰기 시작했던 무렵의 혼란과 불안과 부침을 돌이켜보면 아득하기만 하다. 그래도 전반적으로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꾸준히 세월을 관통하며 글을 써온 덕분에 어쨌든 경험은 늘어갔고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은 점차 안정되어 갔다. 돌이켜보면 올 한 해도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면서 살았던 평탄했던 한 해였다.
 
한데 무슨 청개구리 심보인지 나라는 사람은 안정이 될수록 막연하게 불안해진다. 연말을 맞이하고 새해가 다가올수록 안정이라는 이름하에 내가 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못마땅해지기도 했다. 나 이대로 살아도 괜찮냐고 자문하는 나를 발견한다.


‘나는 제대로 살고 있는가’


‘산다는 게 다 이런 것일까.’


 ‘나는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누구는 배부른 고민이라 할지 모르지만 정체된 느낌은 정말 싫다. 가능성을 더 시험해보고 싶었고, 살아있다는 생생한 실감을 얻고 싶었다. ‘인생, 이게 다인가?’라는 질문에 굴복하고 싶지가 않다. 그래서 내년에는 조금 더 일부러 더 새로운 일을 도모하며 ‘고생’을 자처하고 싶어진다.
 
돌이켜보면 회사를 다니던 그 전의 12년간도 그랬던 것 같다. 특급호텔 홍보실에 다니다가 우아한 VIP마케팅보다는 활기찬 대중마케팅이 하고 싶어 음반사 마케팅으로 직장을 옮기고, 그 다음에는 일에 대한 보다 전략적인 접근을 배우고 싶어서 광고대행사로 옮기고, 그 다음에는 광고주에게 휘둘리기보다 내 자발적인 의지대로 일을 해보고 싶어 인터넷벤처기업으로 옮기고, 그 다음에는 큰 프레임을 가진 조직에서 일해보고 싶은 마음에 대기업으로 직장을 바꿨다. 결핍이 욕구를 만들고 욕구가 변화를, 행동을 가져왔던 것이다. 주어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노상 이런 불평불만을 가진 내가 그래서 과히 싫지는 않다. 
 

 

[관련 기사]

- 임경선 “사랑은 관대하게 일은 성실하게” 〈Across the universe〉
- 완전한 개인의 탄생을 환영하며 : 임경선 ‘나라는 여자’
- 좋은 편집자란
- 밥벌이의 덫
- 읽을 책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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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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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한 칼럼에서, 책을 쓰는 일련의 과정 중 내가 가장 즐거울 때는 첫째, 얼개를 잡고 초고를 내키는 대로 써나갈 때, 둘째는 교정지 상태로 처음 원고를 볼 때, 마지막으로는 책 제목을 고민할 때다, 라고 쓴 적이 있었는데 나는 지금 후자 두 개의 즐거움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왜냐하면 얼마 전, 초고를 쓴 지 9개월만에 새 소설을 탈고, 즉 끝냈기 때문이다. 형언하기 힘든 그 속 시원하면서도 허탈한 체감은 아기를 낳았을 때의 그것과 어찌나 흡사한지. 그러고 보니 9개월이라는 시간도 한 아이를 임신해서 낳기까지의 기간이다. 

 

수 차례 보고 또 보며 수정을 거듭해온 소설 원고를 마감날짜에 맞추어 드디어 담당편집자에게 이메일로 보내니 그녀는 ‘정말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젠 한시름 놓으세요’라고 답신을 보내왔다. 마치 ‘아이 낳느라 정말 수고했다, 이젠 몸조리에만 신경 써라’는 말을 들은 것만 같았다. 사실 소설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고 교정지로 받아서 마무리 수정을 하기까지의 한달 남짓한 시간은, 마치 이 회사에서 저 회사로 이직하면서 가지는 틈새 휴가처럼, 인생에서 주어지는 가장 달콤한 ‘방학’ 중 하나다. 어떻게든 글은 쓰여졌고, 중간에 여러 불안한 과정도 거쳤지만 이젠 무사히 하나의 완성품으로 만들어질 날을 기다릴 수 있다. 해냈다는 안도감과 더불어, 아직은 원고가 책으로 만들어져 독자들의 손으로 넘어간 상태가 아니기에 아직까지는 나(와 편집자)만이 애틋하게 보듬을 수도 있다. 어쨌든 과정의 처음부터 끝까지 중에서 어쩌면 유일하게 반짝 주어지는 선물 같은 시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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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월간 함께 고생해준 나의 친애하는 노트북, 맥북에어 

 

힘들게 수정작업을 하는 동안에는 ‘마감하고 나면’ 하고 싶은 것들, 해야 할 것들이 참 많았다. 여유가 없어서 보지 못했던 영화나 전시를 보러 가거나, 쌓아놓고 읽지 못한 책을 읽거나, 챙기지 못했던 친구들을 만나거나 혹은 아무 생각 없이 격렬하게 쉬고 싶다고 갈망해왔다. 그런데 실제로 마감하고 나면? 그 강렬했던 욕구들은 어느새   시들시들해져 있다. 김연수의 산문 『소설가의 일』에서 ‘소설가는 소설 쓰는 일 외에 애시당초 할 일을 만들지 않는 것으로 시간관리를 한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같은 선상에서 막상 글을 쓰고 나면 그 외의 모든 ‘나머지’ ‘기타’적인 시간들이 부질없게 느껴지는 것이다. 골 지점에 도착해서도 아직 흥분이 체 가시지 않아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일종의 ‘산후조증’일까?

 

그래서 지금의 나는 마라톤 완주 후에도 호흡을 고르기 위해 또박또박 걷듯이, 아직도 마음 놓고 놀지 못하고 매일 아침이면 카페에 노트북 컴퓨터를 들고 나가, 이것저것 끄적거리고 있다. 그것은 다음에 쓸 산문일 수도 있고 곧 만들어질 소설의 책 제목 후보 안이나 홍보카피이기도 하다.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글 쓸 때는 그리도 외로워하면서도 어느덧 그 외로움에 익숙해져 심지어 고독을 즐기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그러면서 한창 소설 원고를 수정하던 시기를 아스라히 그리워하게 된다. 반면 그 안에서 힘들었던 부분 ? 초고수정을 하며 자학했을 때, 연이어 수정하면서 체할 때, 편집자들의 뼈아픈 중간리뷰를 받을 때 ? 은 하나도 기억하지 못한다. 언제 원고지 600매를 채웠는지도 생각나지 않는다. 마치 아이를 낳고 나면 임산부였던 시절을 추억하면서도 그 중 고생한 부분은 선택적으로 기억이 나지 않아 또 다시 임신할 수 있는 것처럼. 

 

올 초, 지난 번의 책을 출간하자마자 이번 소설의 작업에 바로 들어간 나를 보며 친구인 가수 요조는 ‘예술가는 느긋하게 좀 놀 줄 알아야 한다’고 가장 적절한 조언을 해주었다. 하지만 예술가적인 성향도 별로 없거니와 타고나길 급하고 느긋하지 못한 성격을 결국 여태 어떻게 하지도 못했다. 이러면서 다시 원고작업에 들어가면 또 마감일만 목 빼고 기다리겠지. 

 

 

[관련 기사]

- 임경선 “사랑은 관대하게 일은 성실하게” 〈Across the universe〉
- 완전한 개인의 탄생을 환영하며 : 임경선 ‘나라는 여자’
- 좋은 편집자란
- 밥벌이의 덫
- 읽을 책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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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러운 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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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방송인 사유리씨를 만났다. 사회적 기업 ‘아름다운 가게’가 마련한 ‘좋은 이별 프로젝트’에 함께 참가했던 것이다. 버리자니 아깝고 쓰자니 볼 때마다 생각이 나는 전 연인과 관련된 물품들을 아름다운 가게에 기부하는 행사였다.

 

우리는 이별을 주제로 많은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다. 본래도 그녀의 팬이었지만 실제로 만나고 나서 그녀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그녀는 ‘좋은 이별, 아름다운 이별은 없다’라고 단호하게 말하기도 하고, 남자들이 늘 자신으로부터 도망간 이야기나 5년 전 헤어진 남자친구에 대한 미움을 솔직하게 토로하는 등, 한 마디로 ‘겉핥기’ ’좋게 좋게’식의 이야기는 요만큼도 하지 않아 너무 좋았다.

 

행사가 시작되기 전, 대기실에서 ‘결혼제도는 없어져야 한다’고 논지를 펼치는가 하면 한국의 ‘불륜에 대한 이중잣대’를 예리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고보니 사유리씨는 JTBC프로그램 <비정상회담>에 출연해서는 인종차별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던 바가 있다. 인종차별이 없어져도 같은 민족까리 차별을 할 것이고, 상대방에게 차별의 잣대를 댈 수 있는 것은 많기 때문에 차별주의자들은 어떻게든 앞으로도 계속해서 차별할 것이라고. 그녀의 소신있는 생각과 올곧은 가치관이 보기 좋았다. 만남 때 선물로 받은 사유리씨의 에세이 『눈물을 닦고』를 지금 재미있게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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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닦고』에 받은 사유리 씨의 친필 사인

 
얼마 전에 읽은 에세이스트 김현진씨의 『육체탐구생활』도 흥미진진했다. 사실 개인적으로 그녀의 책들 중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것은 마치 한 권의 소설같던 산문집 『뜨거운 안녕』(정말로 통렬하게 ‘뜨거운’ 책이었다)이지만 신간 『육체탐구생활』도 못지 않게 즐겁게 읽었다.

 

김현진씨도 솔직한 걸로 따지면 사유리씨 못지 않다. 자신의 치부를 다 드러내는가 하면, 남자친구가 때린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사람들의 민낯을 보여주는 적나라한 사연들, 부모님과의 적나라한 애증관계, 자신의 진보적 정치성향임에도 불구하고 같은 진보를 비판할 수 있는 줏대있는 객관성을 보여준다. ‘육체탐구생활’이라는 선정적인 제목과 섹시한 커버사진 때문에 엉뚱하게 야한 쪽으로 현혹될 수 있지만, 내용은 느끼함 하나없이 몸뚱아리 하나로 이 세상과 ‘현피’뜨는 치열하고 씩씩한 생존분투기였다. 
 
한국에서 자기 이름 내놓고 일하는 여자들에 대한 분류를 가만 보면 두 가지밖에 없는 것 같다. 예쁜 여자 혹은 센 여자. 예쁜 여자에 대해서는 그 미모예찬 하나로 모든 것이 단순화되고 끝. 한데 후자의 ‘센 여자’들은 또 한 번 왕언니, 무서운 여자, 야한 여자, 비호감 여자, 못생긴 여자, 등으로 나뉘며 웃음, 배척, 두려움의 대상이 되곤 한다.

 

하지만 내가 보는 ‘센 여자’는 다르다. ‘세다’는 것은 말 그대로 ‘강하다’라는 뜻이며 그것은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솔직함과 개방성’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하고 개방적이기 때문에 그녀들은 수십가지의 다채롭고 복합적인 모습들(순진, 엉뚱하기도 하며, 웃음도 눈물도 많고, 귀엽다가도 치열한) 을 보일 수가 있는 것이다. 아마도 나 역시도 사유리, 김현진과 더불어 ‘센 여자’ 카테고리 안에 들어갈 것 같은데 겉으로 보이는 고정된 이미지로 파악당하는 것을 격렬하게 거부하고 싶다! 

 

 

책소개 

 

눈물을 닦고

후지타 사유리 저 | 넥서스BOOKS


이 책은 방송인 사유리를 넘어 일상인 사유리의 이야기를 담았다. 사유리는 트위터를 통해 글로써 진지하게 사람들과 소통한다. 그녀의 글을 처음 본 사람들은 방송에서의 모습과 달라 당황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내 그녀만의 무심한 듯, 담담한 듯 정직하게 세상을 바라보며 전하는 이야기에서 그녀의 진심을 발견한다. 그녀의 짧은 글 속에서 우리는 나 자신의 일상을, 생각을, 편견을, 오해를, 사랑을, 친구를 찾곤 한다. 너무 무겁지 않지만 때론 독특한 표현으로 전하는 그녀의 이야기가 문득문득 우리의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육체탐구생활

김현진 저 | 박하

김현진은 말한다. “슬픔과 기쁨, 모든 기억들은 죄다 몸에 새겨져 있었다. 당신도 그럴 것이다. 너나 할 것 없이, 우리는 모두 몸을 지니고 이 세상을 살아간다. (…) 마구 함부로 해왔던 내 육신이 이제는 나를 용서하기를. 그리고 당신의 육체에도 부디 축복이 있기를. 사랑에 빠지고 또 상심하시길, 우리가 끝내 어딘가에 닿을 때까지. 또 그 여정 동안 당신의 육체가 영혼을 지탱해줄 만큼 튼튼하기를.” 이제 《육체탐구생활》과 함께 영혼을 담는 그릇, 육체 속에 새겨진 당신도 기억 못할 내밀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시기를.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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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벌이의 덫
- 읽을 책이 없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연애소설을 쓰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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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초등학생인 딸아이가 내게 고백을 했다. "엄마, 나 짝사랑하는 남자애가 생겼어." 그러면서 엄마도 짝사랑을 해 본 적 있느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하니까, "기분이 어땠어?" 라며 다시 묻는다. “너무 마음이 아팠는데 행복한 마음이 더 커서 괜찮았어.” 하고 대답했더니, 딸아이는 그제야 "응. 나도 알아~" 라며 그 작은 입술로 깊은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사랑은 그토록 설레는 일이다.

 

나는 ‘사랑’을 주제로 글을 처음 쓰기 시작했다. 2001년 당시 유일하게 쓸 수 있고 또 쓰고 싶었던 주제였다. 칼럼으로, 에세이로, 라디오방송 대본으로, 그리고 소설로 써 왔다. 개인적으로는 소설이라는 ‘이야기’를 통해 풀어나가는 것이 좋았다. 폴 매카트니의 「Silly Love Songs」라는 노래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바보 같은 사랑 노래는 이제 충분히 들었고 지겹다고 당신은 생각하겠지요. 하지만 내 주위를 둘러보니 그렇지도 않아요. 어떤 사람들은 이 세상을 그 바보 같은 사랑 노래들로 채우고 싶어한답니다. 그것이 뭐 잘못인가요.”‘연애소설’에 대해 나는 같은 말을 하고 싶다. 

 

한데 둘러보면 한국에는 순문학소설, 역사소설, 추리소설, 세태소설, 가족소설 등은 눈에 많이 띄지만, 연애소설 혹은 남녀간의 사랑을 주제로 한 소설을 쓰는 작가들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청춘남녀의 풋풋한 ‘썸’을 다룬 로맨스 소설이 아닌 정념의 세계로서의 어른들의 짙고 깊은 사랑 이야기 말이다. 당장 퍼뜩 떠오르는 작가는 박범신과 전경린 정도다.
 
사랑은 분명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일진데 소설에서는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느낌이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았다. 작가의 보다 중요한 사회적인 소명이나 책임의식 때문에 사랑을 주제로 쓰는 일이 가볍고 사소하고 개인적인 것으로 치부되어서일까? 더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주제들이 포진해있는데 개인들의 사랑은 그에 비해 부르주아적이고 사치스러운 것일까. 혹은 연애나 성에 대한 도덕주의적 의식을 무의식적으로 가지고 있어서 기피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작가들이 보기보다(?) 남녀 간의 사랑이라는 주제에 관심이 없거나 그에 대한 경험이 부족해서일 수도 있다. 상상력만으로는 결코 쓸 수 없는 것이 사랑이라는 감정인 것만은 확실하고 연애소설을 쓰려면 기본적으로 이성을 매우 좋아하는, 보통 사람들보다 조금 체온이 높은 사람들이어야 하니까.
 
사랑을 주제로 한 소설이 경시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연애소설은 그 시대의 상식, 도덕, 윤리 같은 것을 재검증하는 의미도 가진다. 상식, 도덕, 윤리는 사회의 규정인 반면, 인간의 마음은 그것들로 통제되지 않으니, 연애소설은 인간 본연의 모습을 지켜보며 사회통념에 도전하는 의미도 있다. 사회가 위축되면 개인 간의 사랑도 위축되는 법. 소설을 통해 사랑이 가진 본래의 자유로움에 빛을 비추게 되기를 바란다. 또한 ‘어른’의 사랑이라고 해서 에로스적인 이미지로 색안경을 끼고 보면 곤란하다. 어른의 사랑이란, 아주 예전 첫사랑 때 품었던 그 순수한 마음부터, 죽음과 맞닿는 극단적인 열정에 이르기까지 스펙트럼은 넓고 깊다. 이성으로 설명하기 힘든, 헤아릴 수 없는 뜨거운 감정의 움직임의 기폭제가 되는 부분을 끌어내서 쓰는 것이다. 잘 생기고 예쁜, 일류대학과 일류직장을 거친 선남선녀가 서로를 좋아하는 이야기 따위가 아니니까(그런 이야기는 소설로 쓸 것도 없다.), 체념과 욕망 사이, 고요와 열정 사이에서 흔들리는 우리들의 적나라한 모습을 볼 수 있으니까 연애소설이 흥미로운 것이다. 어쨌거나, 살아있을 때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처럼 근사한 일은 없다. 올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에 빠지고 보다 많은 작가들이 연애소설을 써주기를 바라며.

 

 

책소개 

 

은교

박범신 저 | 문학동네

거부할 수 없는 홀림, 그 관능을 좇는 어느 시인의 음악적 살인 인간의 '갈망'을 그려낸 박범신의 신작 장편소설 영혼의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작품들을 통해 인생의 깊은 심연을 그려온 작가 박범신. 『은교』에 대해 작가는 『촐라체』와 『고산자』와 함께 ‘갈망의 삼부작(三部作)’이라고 소개한다.

 

 

 

 

 

 

 

풀밭 위의 식사

전경린 저 | 문학동네

독은 독으로 풀고 사랑은 사랑으로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하는 전경린 작가. '대한민국에서 연애소설을 가장 잘 쓰는 작가'로 불리는 소설가 전경린이 다시 '사랑'을 이야기한다. 전작 『엄마의 집』에서 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따스한 시선으로 담아냈던 저자는 『풀밭 위의 식사』를 통해 이미 깨어질 것을 알지만 그 예고된 위험마저 받아들인 한 여자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준다.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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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연재 결정은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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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지금 쓰고 있는 <채널예스> 연재처럼 쉽게 쓰기로 결정한 연재도 없었던 것 같다. 서점 웹진이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읽을 것이고, 쓰고 싶은 일상의 주제를 택하면 되니까 마음의 부담도 없었다. 고로 마감 스트레스도 별로 없다. 
 
반면 얼마 전, 이런 일도 있었다. 한 신문에서 봄에 새로 생기는 지면에 상담 칼럼을 쓰자고 섭외가 들어왔다. 오랜만의 ‘종합지’ 섭외라 남편 포함 주변 사람들은 좋아해 주고 축하해주었다. 나도 들뜬 마음으로 승낙을 했다. 한데 승낙하고 돌아서보니 기쁘다기보다 심리적으로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시험판을 만든다고 미리 첫 회분 원고를 신문사에서 요청하자 그때부터 부담은 스트레스로 뒤바뀌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승낙한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쓰겠다고 말해놓은 상태, 이제 와서 못하겠다고 하면 약속을 어기는 것이고 프로답지 못했다. 짜증이 나 있는 나 자신에게 슬슬 짜증이 나고 있었다. 나 대체 왜 이러지? 왜 그럴까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내가 한동안 연재를 안 하다가 하려니까 그 압박감 때문에.
방사능 치료 입원을 앞두고 있어 심란해서.
아이가 겨울 방학 중이라 삼시 세끼 갖다 바치는 생활에 지쳐 있어서.
나이 먹어서 그냥 기운과 열의가 빠져서.
 
다른 ‘마가머’들한테 내 상태에 대해 하소연하니 그건 아주 정상적인 ‘마감 스트레스’라고 일깨워주었다. 막상 하면 또 곧잘 하면서, 라며 그들은 내가 엄살을 피운다고 생각했다. 그 말을 듣고 나도 마음을 다시 잡으려고 했지만 그다음부터 매일 밤 악몽을 꾸면서 몸에서 거부반응을 일으켰다. 사태는 점점 악화되기만 했다. 하여, 막다른 골목처럼 한 후배에게 상담을 했다. 나 대체 왜 이러냐고. 그랬더니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전혀 다른 의견을 제시해주었다.


“관두세요. 힘들어서 못 하는 게 아니라 이미 상담 칼럼의 세계는 졸업한 것 같아요.

기껏 졸업한 길을 다시 돌아갈 필요는 없잖아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정곡을 찔렸다. 예전에 했던 것을 굳이 다시 하는 것, 작가로서는 ‘사이드잡’ 같은 상담 칼럼을 다시 하는 것, 그것이 가장 심기가 불편했던 것이다. 즉 해야 할 동기가 애초에 전혀 없는데 주어진 일을 거부하는 내가 성실하지 못한 건가, 프로답지 못한 건가, 배부른 것 아닐까, 라며 번외의 갈등을 일으키며 자책하고 있던 것이다. 곰곰 생각해봐도 예전에 한 신문에서 무려 3년 가까이 상담 칼럼을 쓴 적이 있어서 동어 반복을 걱정했고, 이미 상담을 통해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다 했던 것이다. 연재를 앞두고 하고 싶지 않았던 간절한 마음은 일시적으로 자신감이 없어지거나 겸손한 것이 아닌, 냉철하고 객관적인 판단이었다.
 
결과적으로 그 신문사에게는 연재를 못 하겠다고 했다. 하겠다고 했다가 다시 안 하겠다고 해서 부끄럽고 죄송스러웠다. 하지만 주변을 실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스스로를 속일 수는 없었다. 들어오는 일이라면 무조건 군말 없이 하라던 포주 같은 남편도 다행히 내 결정에 ‘잘했어. 인생은 마음가는 대로 운칠기삼이여’라며 예상 외로 이해해주었다. 
 
마음의 진짜 소리를 듣는 것은 정말로 힘들다. 이것이 감당, 극복해야 할 일인지, 그만두어야 하는 일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내 개인적인 판별법은 찜찜함이 지속적으로 온 몸을 맴돌면 위험신호요, 밤잠을 설치면 확실한 경보였다. 또한 그 두겠다고 결정한 후, 아쉬움이나 미련같은 찝찝함이 일절 남지 않고 그 건에 대해 자연스럽게 잊어가면 그것은 그 포기가 옳았음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포기가 끝은 아니다. 속 깊은 후배가 해 준 마지막 말이 기억났다.

 

“대신 더 열심히 하고 싶은 것 잘하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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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아이를 키우면서 글을 쓴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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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가 개학을 했다. 만세! 4주 가까이 삼시 세끼 딸아이의 밥과 간식을 만들고 집안에서 지지고 볶으며 지냈다. 더불어 내 머릿속은 더욱 하얗게 텅텅 비어갔다. 혼자 있는 시간이 거의 없음에 따라 감각은 무뎌지고 원래도 별생각이 없었지만 더더욱 아무 생각이 없어졌다. 쉬운(?) 글을 제외하고는 아이가 있을 때 쓸 수가 없다. 내 안으로 침잠해 들어가서 길어 올려야 하는 종류의 글을 써야 할 때 곁에 있는 아이는 사랑스러운 방해꾼이다. 육아와 글쓰기는 그렇게 상충되는 개념이다.


아이가 없는 작가들이 부러울 때가 있다. 당장 국외에선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는 물론 국내에도 소설가K,J,B가 아이 없이 부부끼리 사는 것으로 알고 있다. 부부는 자유롭게 외국 생활을 하기도 하며 내키는 대로 이사도 한다. 언제라도 글을 쓰거나 안 쓸 수가 있다. 혼자 산속에 들어가서 글을 집중해서 쓸 수도 있고 부담 없이 해외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신청할 수도 있다. 그 자유와 가용시간이 부럽다. 


반면 나는 딸아이가 유치원이나 학교에 가 있는 시간 동안 시간을 쪼개서 글을 쓰거나 내 개인적인 일을 처리해야 한다. 혼자 사는 어떤 작가는 글을 쓰기 전 이런저런 인터넷 사이트를 들락거리면서 본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워밍업’을 해야 한다고 하던데 나는 그런 여유는 꿈꿀 수도 없었다. 아이를 보내놓고 몸을 휙 돌리면 그때부터 바로 일의 본론으로 들어가야 겨우 시간을 맞추곤 했다. 가사노동도 아이가 있는 저녁 시간에 미뤄서 했다. 혼자 있는 시간은 어떻게든 온전히 글쓰기에 쓰기 위해 애썼다. 적지 않은 숫자의 여성작가들이 아이가 한참 클 무렵, 출간 공백이 있는 것을 넌지시 목격하게 된다. 아이가 있다는 것은, 이렇게 물리적으로 글쓰기에 득보다 실이 크기에 글쓰기를 인생의 업으로 삼은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 현명한 결정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이미 늦어버렸다면(?) 아이를 키우면서 글 쓰는 일상을 잘 영위해나가면서 내 마음이 육아로 지쳐서 낡아가지 않도록 소중히 다뤄야 할 것이다. 스티븐 킹도 이십 대의 젊은 아빠였던 시절, 두 아이를 키우면서, 허드렛일로 가족들을 먹여 살리면서 어떻게든 따로 글 쓰는 시간을 마련해서 미칠 듯한 집중력으로 썼다고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고백한 바 있다. 피할 수 없다면 직면해야 한다.


아이를 가지는 일이 글쓰기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부분은 있을까? 있다면 그것은 ‘경험’일 것이다. 아이 때문에 제한받고 못하는 경험이 있는 반면 아이가 있기 때문에 경험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있다. 부모가, 혹은 엄마가 되는 경험, 자식을 사랑하는 슬픔과 기쁨, 자식을 통해 나의 성장기 시절을 되짚어보는 경험, 이타적인 존재가 되는 경험, 자식을 통해 나를 더 잘 알게 되는 경험, 평생 책임져야 한다는 돌이킬 수 없는 무게를 감당하는 경험. 육아에세이나 가족을 소재로 한 소설을 쓸 때가 아니더라도, 부모라는 이름이 부여하는 역할의 다양한 경험은 특별하다. ‘자식이 있어야 철 든다’라는 말에는 동의하긴 어렵지만 다양한 결의 감정을 느끼게 해준다는 측면에서 사람을 성장시키는 건 맞다.


하긴 아이를 두고 득실을 따지면 뭣하나. 이토록 귀찮은 존재가 이토록 귀엽기만 한데. 보고만 있어도 그저 좋은데. 지금은 이렇게 글로 투덜거린다 해도 머지않아 지금의 이 순간을 아름다움으로 기억하고 지독히도 애틋하게 그리워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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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치밀하고도 우발적인 표지 디자인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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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imagetoday

 

서점에서 책을 고를 때 표지디자인을 보는지? 나는 본다. 많이 본다. 원래 알거나 좋아하던 저자가 아닌 바에야 표지가 눈길과 손길을 부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표지가 매력적일수록 그 안의 내용이 궁금해지고 그것은 곧 구매로 이어진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나를 겉모습으로만 판단하지 말고 내면의 아름다움을 봐줘.’라는 것은 어찌 보면 게으른 오만이다. 외면이 매혹으로 끌어당기지 않으면 차마 내면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3월 첫 주에 출간될 장편소설 『나의 남자』는 표지디자인을 제외한 모든 것이 완성되었다. 저자 중에는 표지디자인에 일절 관여를 하지 않는 타입과 관여하는 타입으로 나뉘는데 나는 죄송하지만 후자다. 제목이나 표지디자인에 적극적으로 관여를 하고 대신(?) 책 원고에 대한 편집자의 의견에도 적극적으로 귀 기울이며 그의 조언에 따라 수정을 한다. 즉 각자가 자기 일만 한다기보다 서로 간 의견을 조율해서 가급적이면 모두가 보다 납득할 수 있는 작품이 나오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표지디자인 첫 미팅. 북 디자이너, 편집자, 그리고 저자인 나, 이렇게 책 원고를 읽은 세 사람이 모인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이번 책의 커버 안’의 샘플들을 스크랩해서 북 디자이너와 편집자에게 보여준다. 세 사람은 각자 이 원고에 어울리는 표지디자인의 비주얼과 느낌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눈다. 방향성을 몇 가지로 좁히고 북 디자이너는 그를 토대로 구체적인 시안을 만든다. 이 단계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이 디자인에 필요하면, 그림작가에게 일러스트를 의뢰하게 된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일러스트 시안이 나온다. 이때 각자가 상상하던 것과 다른 느낌의 일러스트가 나와버리면 대략 난감하다. 수정 시안을 조심스레 의뢰한다. 그림작가는 다시 한 번 작업을 해서 보여주는데 이때도 백 프로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어쩔 수가 없다. 수정은 웬만해선 한두 번 이상 의뢰하긴 힘들다. 어쨌든 그 일러스트로 표지디자인 시안은 제작이 된다. 일러스트가 마음에 쏙 들어도 그것을 활용한 표지디자인이 마음에 안 들 수도 있고, 성에 차지 않는 일러스트가 들어가도 디자이너의 역량으로 기대 이상의 시안이 나와 우리를 만족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대개 일러스트가 마음에 차지 않으면 표지디자인에서도 충분히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 비정한 현실이다. 하여, 표지디자인 시안도 수정요청이 들어간다. 마찬가지로 수정요청을 두 번 이상 하기에는 민폐다. 일러스트, 문양, 색상조합, 폰트, 종이 재질 등, 표지디자인에는 다양한 요소가 변수가 되는데 몇 번 안 되는 기회 속에서 직감과 감식안으로 그것들을 예민하게 살펴봐야 한다
 
오늘은 표지디자인 수정안을 가지고 북 디자이너의 작업실로 편집자와 직접 찾아가 미팅을 했다. 혹자에 의하면 북 디자이너들은 이런 의뢰자들을 가장 싫어한다고 했지만 내가 느끼는 절박감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허심탄회하게 현재 나온 시안들에 대한 의견을 공유하면서 시안에 대한 생각이 각자 조금씩 다름을 알 수가 있었다. 딱 ‘이거다’라고 확고히 결정을 못 내리고 계속 우왕좌왕, 애매모호한 상태였다. 그러다가 북디자이너가 혼잣말처럼 체념하듯 중얼거렸다.

 

“사실 저 혼자서 이런 느낌으로 저렇게 가면 어떨까 생각했었는데요…”

 

오옷?! 

 

“그럼 그렇게 하시면 되잖아요!” 나는 목소리를 드높였고

 

“…아주 좋은데요?” 편집자의 눈이 반짝거렸다. 물론 머릿속의 생각과 각자의 상상 사이엔 괴리가 있을 수도 있고 실제 결과물은 우리가 기대했던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북 디자이너 내면에서 치고 올라오듯, 본능적으로 구현해보고 싶은 어떤 디자인, 때로는 ‘그냥 내가 좋은 그 무엇’이 정답일 수도 있는 법. 이성이 아닌 감성이 설득이 되는 법. 이렇게 북 디자이너는 자발적으로 두 번째 수정에 들어갔고 편집자와 나는 ‘어떻게 생긴 아이가 나올까’ 두근두근 조마조마 지금도 기다리고 있다.

 

 

관련 책들

 

B컷 : 북디자이너의 세번째 서랍

김태형 등저 | 달

이 책에서는 현재 현역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업계를 이끌어가고 있는 차세대 북디자이너들의 작업을 보여주고 있다. 김태형 김형균 박진범 송윤형 엄혜리 이경란 정은경, 이렇게 7인이 그 주인공이다. 서점에 깔린 책들의 날개나 판권을 몇 권만 들여다보아도 이들의 이름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편집자를 위한 북디자인 

정민영 저 | 아트북스

책이 나오는 과정, 또 그 책을 독서라는 경험으로 이끌기까지 책의 뒷면에는 저자, 편집자, 디자이너, 마케터 등의 지난한 협업 과정이 배어 있다. 이 중 북디자인은 책의 판형, 표지 ? 내지 디자인, 앞뒤날개, 책등, 종이의 재질, 인쇄, 후가공 등 책의 외형을 모두 총괄하는 일이다. 





[관련 기사]

- 사랑스러운 여자들
- 연재 결정은 어려워
- 아이를 키우면서 글을 쓴다는 것
- 연애소설을 쓰는 일
- 읽을 책이 없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저자 프로필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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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소설 『나의 남자』의 저자 프로필을 쓰며 느낀 바가 있었다. 책에 실린 프로필은 다음과 같다.

 

‘2005년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 사랑과 인간관계 그리고 삶의 태도에 대한 글을 꾸준히 써왔다. 소설 『기억해줘』『어떤 날 그녀들이』와 산문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태도에 관하여』, 『나라는 여자』, 『엄마와 연애할 때』를 펴냈다. 나의 남자는 그녀의 세 번째 소설이다.’

 

이 프로필의 심플함은 내게 잔잔한 기쁨을 안겨주었다. 과거에 펴낸 책들의 저자 프로필란에서 사라진 것들을 한 번 살펴보자.  


우선 출생연도. 예전에는 꼬박꼬박 1972년생, 이라고 처음에 적었다가 어느 날부터 안 적게 되었다. 담당 편집자가 “선생님, 이제 나이는 프로필에서 빼도 되지 않을까요?’라고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고 아뿔싸, 그때부터 나는 내 나이가 더 이상 젊지 않음을, 즉 매력적이지 못함을 깨닫게 되었다. 

 

둘째로, 출신 대학. 출신 대학이 세간에서 좋다는 평가를 받는 곳이다 보면 대학 이름을 써넣고 싶은 유혹에 빠질 수가 있다. 실재 명문대학 이름, 가령 서울대학교 출신이라는 레떼르는 독자들에게 느낌표를 주는 요소일지도 모른다. 조금 부끄러운 얘기지만 과거 초기 책들의 프로필에는 내가 완전히 ‘졸업’한 게 아닌 ‘수료’한 해외의 한 명문대학 이름이 들어가 있다. 어떻게든 자랑하고 싶던 나의 자의식이 작용했다. 그러다가 몇 년 전부터는 아예 대학에 대한 언급을 없앴다. 출신 대학이 지금 40대의 나를 설명해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셋째, 글쓰기 이전의 경력. 정확히는 회사생활 12년간에 대한 언급이다. 어떤 직장들을 다니면서 어떤 일들을 해왔는지 나는 얘기하고 있었다. 마치 ‘글을 쓴 커리어는 오래되지 않았지만 그 이유는 그전에 착실하게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변명을 하는 것처럼. 혹은 ‘나는 출신이 독자 여러분들과 엇비슷해요’ 같은 동질의식을 어필하고 싶었던 것 같다. 직장 여성 대상의 책을 쓸 때는 마치 열혈 커리어 우먼인 양 스스로를 묘사했던 프로필도 있어서 낯뜨거워졌다. ‘남들에 비해 대학을 일찍 졸업해 어느 조직에서든 ‘최연소’라는 호칭을 달았다’라는 자랑 아닌 자랑도 부끄럼 없이 했더라. 아이, 참.

 

넷째, 매체 연재 경력과 방송 출연 경력. 가끔씩 어떤 책들을 보면 일회성으로 나온 방송 명이 주루룩 나열되어 있는 프로필들을 보곤 하는데 보는 내가 다 낯뜨거워진다. 하지만 나도 ‘칼럼니스트’라는 타이틀로 다양한 신문과 잡지, 온라인 매체에 칼럼을 연재하는 일을 주로 했던 시절에는 내가 어떤 매체에 어떤 제목의 연재 칼럼을 썼는지, 어떤 방송을 출연했는지 이걸 다 꼼꼼히 기재하면서 독자들을 유인하는 방책으로 썼다. 지금은 예전만큼 연재 칼럼이나 방송을 안 해서도 그렇지만 책은 책만으로 승부하고 싶다는 마음이 앞서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그 외의 모든 기타 등등. 나이가 지금보다 젊어서도 그랬겠지만 ‘나’를 드러내는 데에 참 발랄(?)했던 것 같다. 가령 이런 문구 - ‘감정에 솔직해 손해를 보면서도 그걸 은근히 즐기는 물병자리 AB형이다.’ ‘겉보기와는 달리 수줍음이 많지만 어쨌거나 솔직하긴 솔직하다.’ ‘남미와 유럽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미국과 일본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리고 마치 생일맞이 소원 빌기처럼 나의 바람들도 촘촘히 적었더라. ‘숲과 비, 수국과 보사노바 음악에서 영감을 얻는 그녀의 희망은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되는 것과 끝까지 자유로운 여자로 남는 것, 이 두 가지밖에 없다.’ ‘심플하고 성실한 삶의 태도를 유지하면서 세월이 흘러도 마음에 굳은살이 안 생겼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이 더 자유로워지고 더 개인으로 설 수 있고 더 관대하게 사랑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지니고 있다.’ 지금은 바라는 게 있어도, 욕심내는 게 있어도, 마음속으로만 읊조린다.

 

아무튼, 이제는 프로필에 실질적으로 그간 펴낸 책들 타이틀만 집어넣게 된 셈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내가 셀프 홍보를 덜 하지 않았나, 아쉽거나 걱정되지 않은 점이 스스로도 신기했다. 아니 오히려 프로필이 단순해질수록, 내가 나 자신을 설명할 필요가 없어질수록, 덜어낼수록, 가뿐해지고 자유로워지는 기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단 두세 줄짜리 프로필을 가진 이석원 작가나 김훈 작가는 역시 ‘고수’라는 생각이 든다. 

 

 

관련 책

 

나의 남자
임경선 저 | 위즈덤하우스

“어느 날 불현듯” 사랑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자신을 발견했다는 작가는 처음으로 1인칭 소설을 쓰며 자신이 “사랑에 빠진 것 같은 착각 속에 살았다”고 고백한다. 임경선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30, 40대 여성들의 마음을 공감하고 대변하는 것은 물론, 20대 여성들까지 아우르며 사랑에 속수무책으로 빠진 한 여자의 적나라한 감정을 기록해나간다.

 

 

 

 

[관련 기사]

- 사랑스러운 여자들
- 연재 결정은 어려워
- 아이를 키우면서 글을 쓴다는 것
- 연애소설을 쓰는 일
- 치밀하고도 우발적인 표지 디자인의 탄생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글이 잘 써지는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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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도쿄여행을 다녀왔을 때 일본 작가들이 편애한다는 한 호텔에 묵었다. 국제적 체인브랜드의 특급호텔들이 즐비한 가운데 독자적으로 자신의 고유 색깔을 지키고 있는 도쿄 간다 스루가다이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야마노우에 호텔(영문명은 Hilltop Hotel)’이다. 인근에 메이지 대학과 진보초 중고서점 거리가 위치해 있어 차분하고 학구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그간 일본 작가들의 저서를 통해 얼마나 이 호텔에 대해 자주 접했는지 모른다. 이 호텔은 1954년에 개업한 이래, 일본 작가들이 집중해서 글을 쓰기 위해 장기 투숙하던 곳으로 유명했다. “야마노우에 호텔에 얼마간 갇혀 지내야겠어.”라는 말은 속세를 끊고 당분간 글만 쓰겠어, 와 동일어같은 것이었다. 저명한 문학상을 탄 작가들은 이곳에 묵으면서 수상 후 첫 소설을 쓰는 풍습도 있었다고 한다. 호기심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큰마음 먹고 이곳에 이박 삼일 간 머물기로 했다. 이 곳에선 정말로 글의 영감이 샘솟고 절로 집중해서 원고지를 술술 채우게 될 것인가?
 
야마노우에 호텔은 정문에 들어서면서부터 예전 그대로의 노스탤직한 인테리어로 과거 60-70년대로 돌아간 듯한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렇게 과거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차분한 호텔을 도쿄에서 찾기 쉽지 않다. 앤티크 가구로 꾸며진 복고풍의 로비 라운지 한 켠에는 수많은 책으로 뒤덮인 ‘작가의 책상’이 오브제처럼 장식되어 있기도 했다. 로비에서부터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호텔’임을 어필하고 있었다. 이윽고 끼익 소리를 내는 낡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장 중요한 객실로 올라갔다. 대체 이곳의 방은 어떻길래 글이 잘 써진다는 말인가.

 

나는 일부러 과거 이곳의 단골이었던 작가 미시마 유키오, 가와바타 야스나리 등이 즐겨 묵었다는 ‘일본식’ 객실을 선택했다. 바닥이 다다미로 되어 있어 푹신했고 유리창에는 창호지로 스크린이 되어 있어 그를 통해 햇빛이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다. 나무 소재로 된 천정은 드높았고 침대 머리맡에는 푹신한 솜 베개와 딱딱한 메밀 베개 두 가지가 함께 세심하게 구비되어 있었다. 어찌 보면 호텔이라기보다 오래된 내 집의 내 방 같아서 정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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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객실 안의 그 책상을 보았다. 대개 웬만한 호텔 객실에는 책상이 구비되어 있다. 하지만 그것들은 책상이라기보다는 있으나 마나 한  ‘테이블’의 느낌에 가깝다. 반면 이곳의 큼직한 앤티크 책상은 엄연한 ‘글쓰기용 책상’이었고 무엇보다도 이 객실의 ‘주인공’이었다. 책상 위에 놓인 램프조차도 글쓰기에 최적화된 채도의 램프였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 앞의 의자를 당겨 앉아 잠시 노트에 이것저것 상념을 끄적여 보았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감정이 저 밑에서 차분히 잘 길어 올려지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쓸 원고 거리가 그 당시에 없었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최근에 읽었던 일본 에세이스트 사카이 준코의 에세이 『책이 너무 많아』에서도 야마노우에 호텔에 관한 이야기가 촘촘히 적혀있다.


“최근 도쿄에는 외국계 자본의 호화로운 호텔이 계속 생기고 있지만 진정으로 도쿄다운 호텔은 이런 곳일 것이라 생각한다. 야마노우에 호텔에 숙박해 본 적은 없다. 그러나 차를 마시거나 식사하려고 잠깐 들를 때마다 지나치지 않으면서도 손님을 안심시키는 서비스를 느낀다.
 
이 소박한 호텔이 풍기는 독특한 분위기는 카리스마적인 매력을 지녔던 고 요시다 도시오 사장 덕분이다. ‘가만히 내버려둔다. 하지만 항상 마음을 쓰고 있다’는 공기가 감도는 것은 '호텔과 료칸의 장점을 두루 갖춘 숙소'라는 것이 그의 바람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이제 곧 벚꽃이 만개하는 사월, 만약 도쿄에 여행 가신다면 이곳 야마노우에 호텔(www.yamanoue-hotel.co.jp)에 한 번 묵어보시기를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바이다. 그리고 그 마법의 책상에 앉아 글을 한 번 써보시길. 영감이 벚꽃 잎들처럼 활짝 피어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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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너무 많아사카이 준코 저/김수희 역 | 마음산책
“행복이란 것, 산다는 것은 읽는다는 행위에 속한 것이구나” 하고 말하는 사카이 준코. 세상에 떠도는 기묘한 공기를 신선한 언어로 포착해 독자들의 절대적인 공감을 얻은 그녀의 ‘극강極强의 독서 산문집’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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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판매지수와 순위 스트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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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_Mnet


딸의 성화로 m.net <프로듀스101>을 같이 보고 있노라면 남 일 같지가 않다. <프로듀스 101>에는 아리따운 소녀연습생 101명이 나와서 끼의 대결을 펼치며 2주마다 국민프로듀서(시청자)들의 투표로 인기 순위를 발표한다. 어떤 연습생의 순위는 예기치 못하게 올라가 함박웃음을 참느라 어쩔 줄 모르는 한편, 대신 어떤 연습생의 순위는 그만큼 내려가게 되어 태연함을 가장해 보여도 속은 바짝바짝 타는 것이 훤히 보인다. 나는 그 둘의 마음에 모두 감정 이입하게 된다.  

 

신작소설이 출간 된 지 어언 한 달이 되어간다. 신간이 나왔으니 ‘요새 많이 바쁘지 않냐’는 질문을 곧잘 받는다. 실상은 그다지 바쁘지 않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조금 분주한 것 빼고는. 나쁜 습관인 걸 알지만 책이 출간된 이래 매일 밤 스마트폰을 머리 옆에 두고 잤다. 그리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에서 알라딘 인터넷서점의 판매지수와 순위, 그리고 교보문고 사이트에 들어가서 판매순위를 체크한다(오전 10시 전후로는 예스24의 업데이트된 지수를 체크한다). 판매지수/순위 페이지가 열리는 그 순간은 매번 심장이 떨리지만 어제에 비해 오늘 내 책이 어떤 반응을 얻고 있는지 두 눈으로 똑바로 체크해야만 직성이 풀렸다. 

 

물론 출간 초기에는 웬만하면 꾸준히 올라가는 추세다. 올라가는 것이 문제라기보다 어느 정도의 폭으로 올라가 주느냐가 관전 포인트다. 출간한 지 2주 안에 판매지수가 몇 점 정도 이상이 되어주어야 앞으로도 꾸준히 치고 나갈 가능성이 있고 판매지수가 지지부진하면 이대로 흔적도 없이 사장되기 십상이니까 말이다. 3주차를 넘기고 4주차를 바라보면서는 슬슬 한 번 더 힘을 내서 점프를 하느냐 혹은 이대로 슬슬 하향곡선을 그리냐의 기로에 서게 된다. 즉 기본 독자들이 일제히 다 산 이후, 2차 독자 대상의 판매가 진검승부랄까. 또한 개인적인 경험상, 3, 4주째에도 판매가 여전히 시원시원하게 상승세이면 소위 ‘세울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 ‘세운다’는 것은 교보문고 등의 오프라인 서점에서 책이 매대에 ‘누워있는’게 아니라 베스트셀러 선반에 세워져서 전시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마침내 한 번 ‘세워지면’ 잘 팔리는 책은 더 잘 팔리는 법칙처럼, 그 책은 생명력 연장을 얼마간 보장받는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책 출간 후 약 한 달 간은 판매추이의 노예로 살게 된다. 다른 저자들도 이럴까? 아니면 제품을 관리하는 마케팅 담당자로 십 년 넘게 직장생활을 했던 나이기에 이렇게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일까? 다른 저자들은 나처럼 피곤하게 굴지는 않을 것 같기도 하다. 전혀 우아하지도 않거니와.    

 

그렇다면 대체 정확히 언제까지 이렇게 판매지수와 순위의 노예로 살아야 하는가? 가끔 미친 듯이 사이트에 접속하는 나에게 환멸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그 안쓰러운 행위, 그 나쁜 습관은 어느 날 불현듯 딱 끝낼 수가 있다. 언제부터냐, 바로 내 책의 판매지수나 순위가 점차 내려가는 시점부터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이젠 안 찾아보게 된다. 매일 순위와 지수가 올라가고 있을 때는 하루의 작은 기쁨이자 희망이 되어준다. 그러나 한 번도 아니고 지속적으로 내려가는 모양새를 보이게 되면 저자로선 무척 괴롭다. 올라가는 날이 있으면 내려가는 날이 있는 게 당연한 세상의 이치지만 그럼에도 하락(가끔은 ‘추락’과도 같다)을 받아들이는 일은 힘겹다. 그리하여 자신의 마지막 자존심을 보호하기 위해서 본능적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대신 그때부터는 정량적인(quantitative) 체크보다 블로그의 서평을 읽는 등의 정성적인(qualitative) 체크로 돌아서며 상처받은 자존심을 조금 달래본다. 악평이라 하더라도 누군가가 내 신간에 대해 거론해주는 일은 그 신간이 아직도 하나의 확고한 존재로서 현재 살아있음을 생생히 증명해주는 셈이니까. 그런 타이밍에 초베스트셀러 작가인 파울로 코엘료가 자신의 트위터에서 『연금술사』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오늘부로 7년 8개월 1주째로 올라와 있다고 언급하면 그게 부러우면서도 여간 얄미운 게 아니다. 아니 그 정도 해먹었으면 됐지… 한데 그럼에도 저자 본인의 입장에선 ‘순위’에 아직도 올라있다는 안도감은 각별할 것이다. 솔직하게 기뻐하는 모습은 해맑기조차 하다. 

 

그나저나 나는 언제쯤 되면 덕을 쌓아서 순위니 판매지수니 이런 거 일체 신경 쓰지 않고 ‘그저 글을 쓸 수 있어서 행복했다’ ‘단 한 명의 독자에게라도 다가갈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이것은 작가로서 불필요한 욕심일까? 경험상 하나 확실한 것은, 그래서 내리막길 순위의 당혹감 맞닥뜨리기 전에 어서 새 책을 쓰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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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 저/최정수 역 | 문학동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또 안다고 해도, 그 꿈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는 의지와 끈기를 지닌 사람은 몇명이나 될는지. 지은이는 이 책 안에서, 사람이 무엇인가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라면 반드시 그 소망이 이루어진다고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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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첫 독립출판물을 내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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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석 달 전, 한 후배와 단골카페에서 이런저런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고 싶은 책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나는 도쿄여행에 대한 책을 내고 싶다고 했지만 수지타산이 잘 맞지 않는 여행서를 내줄 만한 출판사는 없을 거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게다가 여행서는 편집자들이 편집을 기피하는 책 종류 1순위라고 한다. 워낙 체크해야 할 자잘한 정보들이 많아서). 그랬더니 그 후배가 대뜸 말하기를,

 

“그럼 직접 내시면 되잖아요. 독립출판물로.”

 

생각해보니 그것도 흥미롭고 신선한 도전인 듯하여, 그렇게 나의 개인적인 취향이 잔뜩 담긴 독립출판물 『임경선의 도쿄』가 얼마 전에 출간하게 되었다. 처음이자 아마도 마지막인 이번 경험을 이참에 정리해보도록 한다. 독립출판물을 내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냐면-

 

첫째, 물론 모든 시작은 책 원고의 완성에 있다. 책에 들어갈 내용을 기획하고 취재하고 쓰고 구성했다. 『임경선의 도쿄』의 경우 여행정보서였기에 직접 일본 현지로 여행을 가서 취재를 통한 재확인을 거쳐야 했다. 수 차례의 수정 후 원고가 완성되면 전문 교열자에게 교열을 부탁한다. 편집디자이너는 완성된 원고를 가지고 책의 커버와 내지를 디자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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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디자인 중인 여행서 『임경선의 도쿄』

 

둘째, 출판사 등록을 했다. 독립출판서점 외의 곳으로 유통시키려면 출판사 등록이 필수였다. 신분증과 등기부등본을 가지고 관할구청으로 가서 출판사 등록을 했다. 관공서 출입은 언제나 살짝 떨리지만 예상외로 신속 처리되었다. 참, 등록하러 가기 전의 큰일은 바로 출판사 이름 선정. 아이 이름 짓는 신중함으로 지어야 한다. 문화관광부 사이트의 <출판사 검색 시스템>에서 내가 생각해놓은 출판사 이름을 쓸 수 있는지 사전에 확인을 해야만 한다. ‘설마 이런 이름까지’ 싶은 이름들도 웬만하면 사람들이 이미 맡아놓은 터라 깜짝 놀랐다. 결국 이름들 중엔 ‘카프카’와 ‘마틸다’가 사용가능 했는데 고민하다가 똘똘하고 반듯한 소녀의 이미지가 연상되는 ‘마틸다’로 출판사 이름을 정했다.

 

셋째, 사업자 등록을 했다. 구청에서 만들어준 출판사 등록증을 가지고 관할 주소의 세무서를 찾아가 사업자 등록을 했다. 난생처음 개인사업자로 등록을 하는데 ‘사업’이라는 단어 하나로 마음 한 켠에 무게감이 느껴졌다. 친구들이 ‘임대표’라고 놀렸다.

 

넷째, ISBN번호를 신청해야 한다. 말하자면 책 뒷면 바코드에 있는 도서식별 번호다. 국립중앙도서관 서지정보 유통시스템 사이트에서 발행자 번호를 신청해야 했다. 온라인 사이트에서 등록이나 신청, 로그인을 할 때는 왜 그리도 늘 어렵게 느껴지는지. 무사히 접수되었다고 화면에 떴을 때는 절로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정해진 날짜에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실시하는 ISBN교육도 반드시 이수해야만 한다.

 

다섯째, 인쇄소 담당자와 제작회의를 한다. 어떤 사양과 종이로 몇 부를 발행할 것인지를 전략적으로 결정한다. 이즈음에서 유통방식도 고민해야 하는데 물류창고를 빌려 쓰거나 유통대행업체를 알아보지 않고 번거롭더라도 우리 집 안방으로 배송을 받아 내가 직접 서점들에게 유통시키기로 큰 마음을 먹었다. 왜냐하면 책이 나한테서 직접 독자들에게 가는 그 과정을 직접 느껴보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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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소에서 감리를 보면서.

 

여섯째, 서점들과 신규거래계약을 맺는다. 우선 독립출판물을 중점으로 취급하는 네다섯 군데의 독립출판서점들을 접촉해서 판매방식을 협의하고 결정한다. 방법은 선매입이나 위탁판매, 가격은 정가의 65%~70%로 매입을 해간다. 한 편보다 독자들에게 편리하게 책이 전달되기 위해서 몇몇 인터넷서점들과 추가적으로 계약도 했다. 거래계약서와 각종 서류들을 주고받고 책의 이미지와 보도자료를 보내는 등, 자잘하게 할 일이 많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직접 담당MD들과 통화를 하는 등, 책을 쓰기만 하는 ‘저자’일 때는 몰랐던 경험을 하게 되어 너무나 즐겁기도 했다.

 

일곱째, 결재 때 서점에 발행할 전자계산서를 위해 은행에 가서 전자계산서용 공인인증서를 받아온다. 그런 후 악명이 높은 홈텍스 사이트에 들어가서 씨름을 해야만 한다. 관공서 방문과 서류작성만큼이나 심리적 장벽이 높았다.

 

여덟째, 인쇄소에서 만든 책을 집에서 인수한다. 이삿짐센터가 따로 없었다. 트럭 한 대 분의 책을 친구들이 도와 겨우겨우 집 안방까지 날랐다. ‘노가다’가 끝난 다음에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다. 침대 옆에 켜켜히 쌓인 책뭉치들을 보고 내가 그간 저자로서 팔았던 책들의 양을 상상해볼 수 있었다.

 

아홉 번째, 서점들로부터 책주문을 받고 배송을 시작한다. 동네의 택배영업소와 계약을 맺어 저렴한 가격에 정기적으로 택배서비스를 공급받도록 한다. 인근 우체국에 가서 배송박스를 사다 놓았다.

 

열 번째, 예비독자들에게 책이 출간되었음을 홍보한다. 나는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의 SNS를 십분 활용했다. 그리고 매일매일 다양한 서점들로부터 주문을 받고 배송을 하고 전자계산서를 발행하고 서점 엠디들과 통화를 하고 독자들의 피드백을 받으며 급할 경우 직접 책들을 들고 급히 배송을 나가기도 했다. 

 

이렇게 일련의 독립출판제작유통 과정을 거치면서 좋았던 것? 우선 내가 속해있는 업종 - 출판유통의 기본 맥락과 개별 서점들의 운영방식을 절로 배우게 되었다는 점이다. 전에는 책 한 권당 출판사와 서점이 어느 정도의 수익을 내는지도, 책 한 권을 만드는 데에 얼만큼의 비용이 드는지도 알지 못했다. 매일 혼자 과묵하게 글만 쓰던 때와는 달리 오랜만에 활기차게 육체노동을 하며 다양한 사람들과 살아있는 대화를 하면서 일할 수 있었던 것도 좋았다. 여기서 번 돈도 인세와는 달리 뭐랄까 ‘직접 뛰면서’ 번 돈 같아서 적은 액수라도 값어치가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책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은 대개가 세심하고 태도가 단정했던 점이 인상적이었다. 처음 하는 일이라 서툰 점이 많은데도 가이드를 잘 해주셨다.

 

책을 ‘쓰는’ 사람이라기보다 책을 ‘파는’ 사람의 정체성으로 살기를 어언 석 달, 이번의 다양한 역할놀이 경험은 향후 지속적으로 책을 쓰고 출간하는 데에 있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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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선의 도쿄임경선 저 | 마틸다
[임경선의 도쿄]는 도쿄에 대해 흔하게 얻을 수 있는 정보 외의 것들을 신중히 담아냈다. 동시대의 도쿄 이상으로, 과거 도쿄의 역사를 담은 노스탤직한 모습이 궁금한가. 작가 임경선의 섬세한 심미안으로 그러한 도쿄를 안내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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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봄날엔 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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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전 소설『나의 남자』를 출간하고 다음에 쓸 책을 고민해보았다. 막연히 이번에는 에세이를 써야지 생각해보았다. 에세이도 주제나 형식에 따라 다양한 종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우연찮게 연이어 라종일과 김현진이 공저한 『가장 사소한 구원』그리고 소설가 폴 오스터와 존 쿳시가 공저한디어 존, 디어 폴』을 읽게 되었다. 『가장 사소한 구원』은 배경이 너무 다른, 전직 외교관인 70대 노신사 라종일과 30대의 당찬 에세이스트 김현진이 일년동안 주고받은 32통의 편지들을 담았고, 디어 존, 디어 폴』은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존과 폴, 두 사람이 스포츠, 영화, 문학, 정치, 경제, 국제시사 문제 등 거의 모든 주제를 아우르는 편지들을 모았다. 서간집을 이렇게 연달아 읽다보니 나도 문득 누군가와 편지를 주고받고 싶어졌다. 

 

돌이켜보면, 다섯 살부터 대학입학 전까지 나는 이삼년에 한 번씩 아버지의 직업때문에 이 나라, 저 나라로 떠돌며 살아야했다. 그래서 늘 ‘전학생’ 신세였고 매번 때가 오면 헤어져야 했던 친구들과 눈물의 작별을 하며 편지를 주고받기로 약속했다. 그래서 초등학생때부터 고등학생때까지 친구들과 주고받은 AIR MAIL 편지들이 한 가득 쌓였고 그것들은 지금도 고스란히 커다란 보관함에 간직되어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연애편지를 참 많이도 썼다. 주로 캠퍼스 커플이었던지라 학교에서 매일 보는데도 뭐가 그리 또 할 말이 많은지 집에 돌아오면 가족들이 다 잠든 후 조용히 몰래 편지를 써서 다음날 만나면 전해주곤 했다. 물론 그 연애편지들도 빠짐없이 보물처럼 잘 간수하고 있다. 다시 읽어보면 닭살이 돋긴커녕 당시의 순수한 마음이 애틋해서 매번 감동받곤 한다. 부디 편지를 써주었던 그 남자애들이 지금도 무탈하게 잘 살아주기를 기원하고 있다.
 
현대에 들어서 ‘편지’는 본래의 가치를 상실했지만 나는 예전부터 전화통화나 직접 만나 대화를 하기보다 편지와 같은 간접소통을 편애했다. 정성이 들어가고, 한번 더 생각을 해본 후 쓸 수 있고, 무엇보다 세월을 거슬러 그 존재가 남을 수 있는 게 좋았다. 지금도 이메일함에 새 이메일이 도착해있거나, SNS 쪽지함에 새 쪽지가 도착해있으면 찰나의 흥분과 즐거움을 느낀다. 어떨 때는 불과 삼십 분 전에 체크했는데도 그새를 못참고 또 이메일함을 맴돌고 있다. 편지는 중독성이 있다.
 
누구와 편지를 주고받지? 잠시 고민했는데 쉽게 답을 찾았다. 깊은 속마음을 여과없이 드러낼 수 있는 상대여야만 했다. 그래, 가장 친한 여자친구에게 편지를 쓰자. 나의 ‘베프’는 현재 홍콩에 산다. 기업환경에서 이메일이 사용되기 시작한 1990년대 중후반에 이미 우리는 일년간 이메일 서간을 주고받은 적이 있다. 둘 사이에 주고받은, 우리의 20대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이메일편지들을 모두 출력해 두 권의 두툼한 책으로 만들어서 나눠가지기도 했다. 그로부터 이십년 후, 우리는 40대가 되어 이렇게 다시 서로에게 편지를 쓴다. 그 사이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또 어떤 것들은 결코 변하지 않았다. 이참에 서로의 거울이 되어 우리들이 체득하고 잃어간 많은 것들을 정리해보기로 했다. 40대에 ‘불혹’이 되기는커녕 여전히 흔들리고 한치 앞이 안 보이긴 마찬가지였다. 이럴 때, 신뢰하는 사람과의 깊은 대화는 삶의 버팀목이 되어주고 내가 지금 어디에 서있는지에 대한 방향감각도 예민하게 해주더라.
 
벌써 두 달째, 친구와 편지를 주고받는 중이다. 이것이 디어 존, 디어 폴』이나『가장 사소한 구원』처럼 서간집 형태의 책으로 만들어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20대때 그저 소통하기 위해 치열하게 썼듯이 우리는 제3의 눈을 의식하기보다는 우리가 쓰면서 즐겁고 솔직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어찌 되든 봄날에 쓰는 편지란 아련하고 기분 좋은 법이다. 마지막으로 당신이 편지를 받아보거나 써본 적은 언제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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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존, 디어 폴폴 오스터,J. M. 쿳시 공저/송은주 역 | 열린책들
폴 오스터와 J. M. 쿳시의 서간집 『디어 존, 디어 폴』이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다. 노년에 접어든 두 작가는 편지로 인생의 희로애락을 논하며 깊은 우정을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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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사소한 구원라종일,김현진 공저 | 알마
대한민국 1퍼센트라 불리는, 이른바 성공적인 엘리트 코스를 밝아온 라종일 한양대 석좌교수와 10대 시절 《네 멋대로 해라》를 출간하며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자칭 집도 절도 빽도 없는 도시빈민이자 비정규직 노동자 에세이스트 김현진. 겹치는 데라고는 전혀 없는 30대 ‘날백수’와 멋스러운 70대 노교수는 편지를 주고받으며 무슨 이야기를 나눴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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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프에 빠졌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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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어 ‘아무것도 안하고 싶다’를 촉발시킨 이미지. 출처_미상

 

일주일째 슬럼프다. 아무 글도 쓰기 싫다. 성장기시절, 1-3년에 한번씩 외국을 옮겨 다니면서 살다 보니 무엇에든 쉽게 질리는 편인데 글쓰기는 십 년 넘게 오래도 한다 싶었다. 한데 올게 왔나 보다. 덤으로 결혼생활도 무려 16년을 어떻게 했나 모르겠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게 슬럼프의 정신상태는 이렇다. 내 안에서 우러나와 쓰고 싶은 글도 없고 써놓은 글을 보면 생기가 없다. 지금까지 낸 책들도 얕고 알맹이가 없는 것만 같다. 작가 업(業)의 기본 사이클 - 글을 써서 책을 내고 독자들을 만나고 또 다시 글을 써서 책을 내고 독자들을 만나는 - 이 지겨워졌다. 세상은 이토록 책으로 넘쳐나는데 뭐 잘났다고 나까지 책내서 뭐하나 싶다. 소재도 고갈되었고 나이도 들어서 앞으로는 더 이상 책을 쓰지 못할 것 같다. 지표를 잃고 주저앉은 막막한 느낌. 

 

사실 어느 정도 이쯤에서 슬럼프를 겪으리라 예상도 했다. 지난 5년간 쉼 없이 9권의 책을 써냈다. 중간중간 재충전을 하라는 조언도 무시하고 시간이 얼마 안 남은 사람처럼 절박함으로 작업을 해왔다. 최근작인 장편소설『나의 남자』를 출간하고 나서 정신적 공황이 올 거라고 직감해서 일부러 독립출판물이라는 일거리를 만들었다. 독립출판물 여행서 『임경선의 도쿄』의 작업이 끝나자 이번에도 일의 공백기가 오는 것이 두려워 서간집 에세이원고를 서둘러 준비했고 한 달 만에 한 권 분량의 원고를 써냈다. 그런데 한숨을 돌리고 다시 처음부터 원고를 읽어보니 한마디로 거지같았던 것이고 그때를 기점으로 팡 터지며 나는 확 슬럼프에 빠진 것이다. 

 

그나마 나의 긍정적인 부분은 고민이 있을 때는 소문을 낸다는 점이다. 주변의 창작자들은 저마다의 슬럼프를 자랑했다. 아는 만화가A는 무려 3년간 슬럼프였다고 하고 만화가B는 매번 장편연재를 하나 끝낼 때마다 슬럼프를 겪는다고 했다. 한 소설가는 자신도 지금 슬럼프라고 하소연이고 또 다른 저자는 매번 연재원고 마감할 때마다 슬럼프지만 겨우 꾸역꾸역 원고를 해서 보낸다고 토로했다. 그리고 모두가 내게 조금만 쉬어라, 쉬는 것을 즐겨라, 쉬다 보면 슬슬 입질이 들어와서 새 애인처럼 좋을 거다, 장편소설을 쓴 후엔 쉬어줘야 한다고 했다. 다 고마운 조언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작업하고 있는 책 원고’가 없다는 것은 내게 우울하고 불안한 일이다. 내가 무용지물이 된 것 같은 기분에 들게 한다. 슬럼프 중에 읽은 책들도 어째 참으로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이다. 김동영/김병수의 에세이 『당신이라는 안정제』에서는 심한 공황장애를 앓는 작가 김동영도 계속 그 와중에 글을 써나가고 있었으며 스티븐 킹의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에서 주인공 앤디 듀프레인은 27년에 걸쳐서 감옥방의 벽을 파내서 기어이 탈옥하는가 하면 무라카미 하루키 자전적 에세이인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작가로서의 ‘지속성’을 강조하고 또 강조하고 있었다.

 

그래서 닥친 이 슬럼프를 어떻게 할 거냐고? 주변의 조언대로 놀만큼 놀면서 충분히 바닥까지 친 다음에 저절로 다시 올라오는 방법도 있겠지만 역시 그것은 내 스타일이 아닌 것 같다. 슬럼프라는 늪에서 빠져 나오려면 조금이라도 움직이게끔 하는 ‘계획’이 필요하다. 당장 지금 써놓은 원고는 거지같은데 그렇다고 달리 새롭게 쓰고 싶은 글이 없다, 가 문제라고 한다면 1) 정말 지금 써놓은 원고가 거지같은지 제3의 객관적인 눈으로 봐줄 편집자에게 조언을 구한다 2) 당장 쓰고 싶은 글이 없다면 내가 좋아할만한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이런 걸 쓰고 싶다’는 자연발생적인 감정이 우러나오게끔 유도한다. 

 

그래서 지금은 위의 1)과 2)를 하고 있는 중이다. 멈춰 서있는 것이 영 불편하다면 어떻게든 앞으로 걸어나가야만 한다. 플랜A에 이상이 생겼다면 플랜B를 실행해보고 그것도 안 되면 플랜C를 고민해볼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이지만 내가 해볼 수 있는 것을 차례차례 해보는 것, 그것 밖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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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라는 안정제김동영,김병수 공저 | 달
『당신이라는 안정제』는 환자와 그 환자의 주치의가 공동으로 집필했지만 절대 조울증이나 불안장애 그리고 공황장애를 다룬 의학도서로 봐서는 안 된다. 그저 서로 다른 시각으로 그것을 바라보는 일기 정도가 어울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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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스티븐 킹 저/이경덕 역 | 황금가지
전 세계 3억 부 이상을 판매한 이야기의 제왕 스티븐 킹의 중편집 <사계>. <사계>는 봄, 여름편과 가을, 겨울편으로 분권 출간되었으며, 스티븐 킹의 담당 편집자 요청에 따라 포함된 '겨울'편을 제외하면 스티븐 킹의 전매특허인 공포 장르를 탈피한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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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으로서의 소설가무라카미 하루키 저/양윤옥 역 | 현대문학
작품을 발표하는 일 외에는 침묵으로 일관해왔던 무라카미 하루키가 1979년 등단 이후 최초로, 자신의 글쓰기 현장과 이를 지탱하는 문학을 향한, 세계를 향한 생각을 본격적으로 풀어놓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성실하고도 강력한 사고의 궤적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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